숨진 박영철 상병, "월급 7만2000원 부모님 드린 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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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으로 군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 과정에서 두 병사가 보여준 '해병대 투혼'이 잔잔한 감동을 낳고 있다.

군 당국의 조사 결과 해병대 소속 이재혁(20) 병장과 박영철(20.사진) 상병은 목숨이 오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군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소총과 실탄을 지키기 위해 범인과 사투를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박 상병은 범인이 몬 코란도 승용차에 치여 중상을 입은 채 총을 뺏기지 않으려고 5분간 싸우다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해병대는 사건 당시 일병이었던 박 상병이 군인 정신을 지킨 점을 높이 평가해 7일 일계급 특진시켜 상병으로 추서했다. 고(故) 박 상병의 영결식은 소속 부대인 해병대 2사단 연병장에서 8일 오전 10시 김장수 국방부 장관 등 군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사단장(葬)으로 치러진다.

◆해병대 투혼으로 맞서 싸웠다=군 당국은 목격자 진술 등을 통해 조사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공개했다.

범인은 6일 오후 5시40분쯤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 초지어시장 앞길에서 야간 작전을 위해 3m 간격을 두고 이동하던 이 병장과 박 상병을 향해 코란도 차량을 돌진시켰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차량에 먼저 들이받힌 박 상병은 치명상을 입은 채 정신을 잃었다. 나중에 치인 이 병장은 쓰러지긴 했지만 의식은 잃지 않은 상태였다. 차를 세운 범인은 길가로 내려와 양쪽 호주머니에 손을 감춘 채 쓰러져 있는 이 병장을 안심시킨 뒤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길이 20cm의 흉기를 꺼냈다. 그러곤 이 병장의 손과 얼굴을 찌른 뒤 소총을 뺏으려고 했다.

정신이 든 이 병장은 중상을 입은 와중에서 범인에게 대항했다. 태권도 2단의 유단자인 이 병장은 K2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범인의 이마를 가격하고는 "총을 쏘겠다"고 소리쳤다. 이마를 얻어맞은 범인은 피를 흘리며 당황하다 모자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이 병장도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범인은 이 병장을 20m가량 끌고 가며 흉기로 허벅지와 얼굴을 찔렀다. 그 와중에도 이 병장은 소총과 탄통(탄약과 수류탄 등이 들어 있는 통)을 뺏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범인은 이 병장의 소총을 뺏고선 도로 옆 5m 아래 갯벌로 그를 밀어서 떨어뜨렸다.

범인은 다시 쓰러져 있는 박 상병에게 다가갔다. 범인이 소총을 빼앗으려 하자 마침 의식을 회복한 박 상병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박 상병은 소총의 멜빵 끈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다급해진 범인은 저항하는 박 상병의 옆구리와 허벅지 등을 일곱 차례나 찌른 뒤 탄통만 집어 들고 달아났다.

◆끝내 사망한 박 상병=차에 치인 데다 범인의 흉기에 찔려 여러 군데 깊은 상처를 입은 박 상병은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후송 도중에도 그는 소총을 두 손으로 꼭 부여잡았다.

해병 2사단 53대대 행정관 김영규 상사는 "박 상병은 대학에 다니는 누나의 학비 부담을 덜기 위해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며 "월 수당 1만5000원과 월급 7만2000원을 모아 부모님에게 드릴 정도로 효자였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사건 닷새 전 어머니에게 전화해 "보고 싶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 상병이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산다'고 적어놓은 그의 미니홈피에는 네티즌들의 추모 글이 쏟아졌다.

박 상병과 함께 병원에 후송된 이 병장은 얼굴에 심한 출혈을 입고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필답으로 사고 상황을 진술했다. 그의 진술은 사건의 실체를 신속히 파악하고 30대 범인을 잡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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