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학 입시에 '묻지마 과거' 안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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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들이 입학생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까다로워졌다. 올해 4월 버지니아 공대에서 한국계 학생 조승희가 총기를 난사해 32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때문이다. 대학 측은 교내 총격 사건이나 폭력 사건을 예방하는 데 필요하다며 입시생들의 고교시절 정학, 퇴학 유무 등 ‘과거’를 더욱 꼼꼼하게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하버드 대학과 프린스턴 대학을 비롯한 315개 대학은 주로 온라인으로 공동 입학원서(the Common Application)를 받는다. 여기엔 입시생이 고교에 다닐 때 교칙 위반이나 품행 불량으로 퇴학 또는 정학을 당한 적이 있는지, 경범죄나 중범죄로 체포되거나, 기소된 적이 있는지 등을 당사자와 고교의 상담선생에게 묻는 항목이 있다.

이는 지난해부터 생긴 것이지만 조승희 사건 이후 대학 측은 학생들의 고교시절 전력을 더욱 유심히 살피고 있다고 LA타임스가 5일 보도했다. 공동원서를 사용하지 않는 대학에서도 입학 원서를 통해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공동원서를 사용하는 포노마 대학의 부총장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학생이나 고교가 있다면 해당 학생은 입학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학생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측면이 있을 뿐 아니라 일부 학생들에겐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오리건주의 한 학생은 고교 시절 성적이 우수했지만 1학년 때 옷가게에서 셔츠를 훔친 전력이 있어 과거를 묻지 않는 대학에만 지원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LA타임스는 “고교시절 한번 정도 싸움을 했거나, 맥주를 마시다 적발된 경우 입학을 거부하지 않는다고 대학 측은 말하지만 학생들은 불안해 한다”고 보도했다. 따라서 원서를 작성할 때 과거를 숨기는 학생과 그걸 눈감아 주는 상담선생도 있고, 그러기 때문에 대학 측은 얼마나 많은 학생이 과거의 잘못을 은폐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지난해 공동원서를 제출한 26만6087명의 학생 가운데 고교에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의 비율은 2.32%, 범죄행위로 기소된 적이 있다고 한 학생의 비율은 0.25%인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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