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1.흔들리는위상-對北독점창구는 옛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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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朝總聯)의 동요가 심상치 않다.55년 결성된 이래 줄곧 북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왔던 조총련이 남북한 경제력차의 확대와 사회주의 몰락,김일성(金日成)사망등 잇따른 충격으로 몹시 흔들리고 있다.해마다 5천~6천 명씩,올들어서도 7월말까지 4천3백여명이 이미「한국국적」으로 옮겼으며 최근에는 조선상공연합회 부회장을 비롯한 조총련계 상공인 1백40여명이 무더기로 조직을 탈퇴했다.
변화하는 조총련의 현주소를 6회에 걸쳐 시리즈로 진단해본다.
[편 집자註] 『이곳에서는 9월15일에 金주석(金日成)사망 1백일 추도식이 거행됐습니다.그런데 정작 평양에서는 16일 추도식이 열렸잖아요.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이 모이지 않았어요.』 일본 니가타(新潟)현에서 한국식당을 경영하는 조총련계 동포 K모(75)씨는 김일성의 추도식과 같은「중요한」 행사에 혼선이 생긴데 대해『영문을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러한 평양과 조총련간의 「혼선」은 며칠이 지난 9월말에도 있었다.조총련은 9월말 김정일(金正日)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에 오를 것으로 보고 일본 전역에서 대대적인 축하연을 벌일 계획이었다.그러나 예상은 또 빗나가 각 지부에서는 호텔예약을 취소하느라 부산을 떨었다.조총련과 평양간의 이러한「혼선」을 조총련의 위상(位相)변화로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겉으로 보이는 조총련의 북한내 위상은 대단하다.조총련은 북한최고인민회의에 대표를 6명이나 보내고 있으며 김일성 장례식에 참석한 한덕수(韓德銖)의장은 막강한 오진우(吳振宇)인민무력부장바로 옆자리에 섰다.서열로 치면 4위자리다.허 종만(許宗萬)조총련 책임부의장은 당시 조사(弔詞)를 읽었다.
과거 조총련은 북한의 주일(駐日)대표부나 마찬가지였다.북한을방문하려는 일본 사람들은 반드시 조총련을 통해야 했다.
그러나 조총련은 이제 그같은 독점적인 권한이 없다.
북한을 왕래하는 일본의 주요인사들이 북한과 직접 연결되는 파이프를 갖게됐기 때문이다.
조총련 산하단체 모(某)간부는『북한을 방문하려면 베이징(北京)의 북한 대사관에 신청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조총련에 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88년 평양에 금강산국제무역개발회사를 세운 재미(在美)교포 실업가 박경윤(朴敬允)의 등장은 조총련의 추락한 위상을 한 눈에 보여준다.
朴씨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개인적인 파이프를 맺고 일본에 나타나 조총련을 무시한 채 관광용 전세기 운영등을 통해 북한에사람을 실어나르는등 대북(對北)창구역임을 과시했다.
머잖아 北-日 국교정상화가 실현되면 조총련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같은 임의단체로 전락,정치적 영향력을 거의 잃을 것으로 보인다.북한대사관이 일본에 생기면 조총련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자금공급원으로서의 역할밖에 남지않을지도 모른다.
조총련이 소유한 학교등 공공건물은 토지 27만9천2백평,건평16만1천8백평으로 약 5천2백억엔(약 4조2천억원)의 자산가치를 갖고 있다.
[東京=李錫九특파원] 北-日국교가 이뤄지면 이 많은 재산이 모두 북한의 국가재산으로 환수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조총련 인사들의 큰 우려다.
최근 북한이 시도했던 조총련 지도부 개편작업은 주일대표부 성격의 조총련을 자금공급원 정도로 격하시킨 작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조총련의 「대부(代父)」로 1세대인 한덕수의장을 북한으로 귀국시키고 그 자리에 김정일의 신임이 두터운 허종만을 후계자로 앉히려했다.이에따라 북한은 93년7월6일 조총련 규약에도 없는 책임부의장제를 신설,부의장 가운데 나이가 가장 적은 허종만을 앉힌뒤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그러나 韓의장이 4월26일 「영구귀국」한 후 조총련은 이진규(李珍珪)제1부의장과 허종만간의 알력으로 심한 내분을 겪었으며북송(北送)자금 수금도 원활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완전퇴진한 것으로 알려졌던 韓의장이 10월22일 돌연 일본으로 돌아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許체제에 대한 조총련의 내부반발이 생각보다 드세어 「수금(收金)」이 잘 안되고▲韓의장의협조없이는 사실상 그의 명의로 된 조총련 재산처 분이 어려운 탓이다. 일본에 뿌리를 내리려는「재일의식」이 강한 2,3세들이조총련의 주축을 이루면서 자금원으로서의 조총련과 북한간의「연결고리」도 어쩔 수 없이 느슨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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