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내년 23조 투자 특검 뒤로 보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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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내년 초 집행할 예정이었던 조(兆) 단위의 설비 투자를 보류 또는 연기했다. 또 연봉 수억~수십억원을 주고 데려오는 수퍼급 인재 영입도 중단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의혹 제기에서 시작된 비자금 파문이 계열사 압수수색, 주요 사장단 출국 금지, 검찰의 특별수사와 특검으로 이어지면서 삼성의 경영 차질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삼성 전략기획실 고위 임원은 4일 "애초 2008년에 연구개발(R&D) 투자를 포함해 총 25조원의 투자 계획을 세웠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최근 발표한 2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LCD 8세대 투자 건을 빼고는 최악의 경우 주요 투자 집행이 특검이 끝날 즈음인 4월 이후로 연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은 그룹의 지휘탑 격인 전략기획실이 자금 사정과 투자의 시급성을 분석해 계열사의 주요 투자 규모와 일정을 조율해 왔다. 삼성은 이를 바탕으로 올해에도 14조3000억원의 시설 투자와 8조3000억원의 R&D투자 등 총 22조6000억원을 집행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신제품 교체 시기가 빠른 정보기술(IT) 업계의 경쟁력은 바로 적기 투자"라며 "IT사업이 집중된 사업 특성상 투자가 3개월만 늦어져도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룹 차원의 투자 계획이 이처럼 헝클어지면서 공채 계획은 물론, 국내외 우수 인재 영입 작업 역시 표류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통상 연말에 내년 투자 계획을 발표한 뒤 국내외에서 인력 채용 규모를 확정한다"며 "현재로선 인력 유치 방안이나 일정조차 세우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상당수 계열사 사장들이 출국 금지 조치로 발이 묶여 버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현지에서 최종 면접을 통해 뽑는 수퍼급 인력 영입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자금 파장은 글로벌 사업장으로 확산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일부 계열사의 해외 사업장에선 입사를 꺼리거나 비자금 의혹의 파장을 묻는 현지 채용 인력의 문의가 잦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룹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해외 사업장을 둔 계열사마다 '비자금 파문은 사실이 아니다'며 현지 직원에게 설명하고 있다"며 "하지만 현지 언론을 통해 온갖 의혹들이 마치 사실처럼 전해지고 있어 직원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표재용.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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