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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도청 국가기밀.기업정보 무방비 상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책상 위의 개인용 컴퓨터(PC)나 정부기관.기업체의 주전산기에 연결된 단말기에 입력된 정보가 마치 전화가 도청되듯 외부로고스란히 흘러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지적돼 충격을 주고 있다.국내에 보급된 PC가 5백만대에 달하 고 국가기관및기업의 정보가 대부분 컴퓨터에 쌓여가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컴퓨터 도청의 심각성이 뒤늦게 부각되고 있다.
최근 일본 우정성이 보고서를 내놓아 국내에서도 새삼 관심의 대상이 된 「PC도청」은 컴퓨터에 문자를 입력하거나 키보드의 특정기능을 작동할때 키마다 특유의 전파를 외부로 발산하게 되는데 가까운 거리에서 증폭장치등을 이용해 이를 감지 ,입력되는 정보의 내용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이때 PC 내부의 전자회로나 배선,컴퓨터 통신용 모뎀등이 외부로 전파를 내보내는 안테나의 역할을 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전산화의 확산과 더불어 국내에서도 앞으로 PC도청이 국가기밀 및 산업정보,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단의 하나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양대 전파공학과 김형동(金炯東)교수는 『컴퓨터 전파도청은 국내에서도 80년대 중반부터 이론적으로 검토돼 왔고 국방과학연구소.안전기획부등의 기관이 89년부터 이에 관한 연구를 해왔으나 실제 도청 사례는 알려진 것이 없다』며 『미국 .유럽의 정보기관은 80년대 후반부터 실제 이 원리를 이용한 도청을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우정성은 PC를 통해 문자를 입력할 때 문자마다 2백~4백㎒의 미약한 전파를 발산하게 되는데 고성능 도청기를 사용하면 1백m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입력되는 정보를 알 수 있다고밝혔다. 컴퓨터의 전파 발산을 전문으로 측정하는 한국EMC연구소 조만성(曺滿成)소장은 『멀리 떨어진 곳의 컴퓨터 입력 내용을 곧바로 도청장비 화면에 나타낼 수 있다』며 이미 이같은 기술은 외국의 경우 군사용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사용되고 있 다고말했다. 최근 국내 모 TV에 기업의 특허관련 정보를 PC도청으로 훔쳐내는 장면이 나오는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 속의 산업스파이는 PC 본체에 칩을 부착하는 방법으로입력내용을 탐지했지만 이같은 방법도 결국 전파를 분석함으로써 어떤 글자가 입력됐는지 분석하는 방식이다.
英BBC방송도 최근 컴퓨터에서 공중으로 흘러나오는 전파를 분석,도청하는 방법을 특집으로 방영하기도 했다.
용산 전자상가에서 도청장비등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국내에서도 컴퓨터 도청장비를 쉽게 갖출 수 있으며 美.日등지에서는 PC도청용 장비들을 시장에서 구하기가 어렵지 않다』며 컴퓨터가 도청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컴퓨터 해커는 사용자번호및 비밀번호를 알아내 컴퓨터 내부의 정보를 훔쳐내는 것이지만 PC도청은 키보드가발산하는 전파를 잡아내 문자를 그대로 구성할 수 있어 해커가 암호를 풀어야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과 대비된다.
지난 93년 서강전자통신의 CATV기술 유출과 같은 기존 산업스파이사건들 대부분이 기술정보가 들어있는 디스켓을 넘겨줘 절도.횡령죄등이 적용됐지만 컴퓨터 도청의 경우 어느 법에도 이같은 형태의 범죄를 처벌할 뚜렷한 조항이 없는 실정 이다.
국가기밀등이 이러한 전파 도청으로 누설될 수 있음이 알려지면서 미국에서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보안기관(NSA)에서 「템페스트」라는 규정을 두고 PC회로의 설계나 사용되는 재료에 전파차단기능을 부가,컴퓨터를 특별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컴퓨터 가격이 크게 올라가게돼 컴퓨터의 보급에 큰 장애가 된다.
또 비밀정보를 다루는 기관에서 작업실을 구리망등의 금속으로 덮어 씌워 전파가 흘러나오지 않게 하거나 방해전파를 발산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에서도 다각적인 방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방해전파는 군에서도 적군이 무선통신 내용을 도청하지 못하게 하거나 레이더망을 교란시키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컴퓨터에서 나오는 전파를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
현재의 기술로 방해전파 발생기를 개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일반 시판용으로는 수요가 없어 개발이 이뤄지지 않고있다.
강중협(姜仲協) 체신부 법무담당관은 『컴퓨터 도청도 일반 통신 도청처럼 통신비밀 보호법이나 영업비밀 침해죄.절도죄등을 준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지만 현재로서는 법적 규제장치보다는오히려 손쉬운 컴퓨터 도청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서둘러 컴퓨터에서 발산되는 전파 차단에 대한 기술기준등을 제정,중요 기업.기관부터라도 사용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朴邦柱.金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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