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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문제작가>"죽은 군대의 장군" 카다레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거론됐던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58)의 대표작『죽은 군대의 장군』이 국내에 처음으로 번역 소개됐다(문학세계刊).카다레는 24세때 발표한 처녀작『죽은…』이 30여개국에 번역되면서 일찍이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나 국내에는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그러나 이번에『죽은…』의 출판을 계기로 저작권 대행업체인 「DRT에이전시」가 다른 작품의 국내 출판을 주선하고 있어 앞으로 카다레의 작품들이 잇따라 출판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카다레의 국내 출판은 단순히 세계적인 작가의 국내 소개라는 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문학의 세계성 획득이 하나의 과제로 제시되고 있는 우리에게 카다레의 작품들은 알바니아처럼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의 작가가 어떻게 세계성을 획득할 수 있는지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드리아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와 마주보고 있는 인구 3백30만의 알바니아는 외세의 침략으로 점철된 수난의 역사가 우리와 너무나 비슷하다.이 때문에 국민성 역시 감당하기 힘든 역사적 비극마저 곰삭이는 한의 정서를 체득하면서도 외 세에 대해서는 불 같은 적개심을 보이는 약소국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유럽인들은 이같은 알바니아인들의 조울증을 두고 「야만」이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카다레는 허무와 광기로 이어지는 알바니아인의 고단한 삶을 두 극단에서 고스란히 감싸안는다.그는 북한에 버금가는 폐쇄적인 사회주의를 만들어 내는 대물림의 광기를 정치권력의 생리를 드러냄으로써 경계한다.
그리고 광기를 유발시켰던 적이 사라지고 나면 적군의 패잔병까지도 따뜻하게 대해주는 알바니아인의 허무를 야만이 아닌 모성의차원에서 재구성해 보인다.
철저한 알바니아인임을 자처하는 카다레가 조국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부딪칠수 밖에 없었던 이 두가지,바로 전체주의에 대한 경계와 상처받은 알바니아 민족성의 복원은 그의 중심 테마가 된다. 카다레는 이 두가지 문학적 과제를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 나간다.『죽은…』을 비롯한 카다레의 소설들은 거의 정치적 사건을 비롯한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그러면서도 카다레는 역사의 주체들을 익명화하는 방법으로 역사를 신화로 바꾸어 버린다.
신화는 인간의 원형적 삶을 보여준다.신화로 재현된 역사는 그억압적 상징들을 내보일 수 밖에 없으며 카다레는 이같은 방식으로 알바니아에 드리워진 역사의 그늘을 걷어내고 민족성의 원형을복원해 낸다.
『죽은…』은 2차대전 중에 죽은 군인들의 유해를 찾아가기 위해 알바니아에 온 아탈리아 장군을 통해 역사라는 환상을 보여준다.화려한 군복으로 치장됐던 군인들이 20년이 지난후 뼈만 앙상하게 남아 발굴되는 모습은 바로 상징이 거세된 역사의 모습을환기시킨다.
우화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는 그의 또 다른 소설『피라미드』는피라미드가 세워지는 과정을 추적하며 유토피아의 허구를 고발하고있는 작품이다.여기에서 피라미드는 사회주의가 약속하는 유토피아를 상징한다.카다레는 허구인 유토피아를 내세워 국민의 불만을 흡수하면서 유지되는 전체주의 권력의 생리를 해부한다.
***90년 프랑스로 망명 흐루시초프 시절의 소련과 외교를 단절할 때 알바니아의 정치상황을 다룬『위대한 겨울』과 이후 중공과 외교를 시작할 때의 이야기인『만리장성』등 정치를 소재로 한 거의 모든 소설에서 카다레의 이같은 경향은 계속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카다레의 조국 알바니아는『북소리 같이 퍼붓는비』와 같은 작품에서 보여지듯 역사의 상처를 치유받고 온전한 신화의 나라로 다시 태어난다.
정치적 현실과 신화적 상상력이 어우러지는 이같은 카다레의 작품성향은 그의 성장배경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카다레는 1936년 그리스 접경지역인 기이로카스터로에서 태어나 초.중등교육을 받으며 그리스를 비롯한 발칸반도 국가들의 신 화에 크게 영향받았다.알바니아 최고 명문인 티라나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카다레는 이후 모스크바로 유학가 소비에트 리얼리즘을 공부하고 돌아왔다.그 뒤 잠시 문학잡지사의 기자로 일하다 전업작가로 나선그는 70년에서 82년까지 민의회의 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알바니아 공산 정권이 점점 관료화되면서 지식인에 대한탄압이 심해지자 90년 프랑스로 망명,현재는 파리에서 활동하고있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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