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하고 평등한 관계 됐다" 한·미동맹 애정 품고 하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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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휘하에서 일본군과 싸운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출신의 대표적 지한파 미국 정객 헨리 하이드(일리노이주.사진) 전 하원의원이 지난달 29일 세상을 떠났다. 83세. 1974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32년간 의정활동을 하며 하원 법사위원장, 국제관계위원장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말 건강상의 이유로 정계를 은퇴했다. 사인은 심장병으로 전해졌다.

하이드 의원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눈을 감아 온 미 의회의 악습을 깬 인물로 기록된다. 그는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으로 있던 지난해 9월 레인 에번스(일리노이주) 하원의원이 발의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미 의회 사상 처음으로 상임위에서 채택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지난해 6월 방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추진하자 "그러려면 야스쿠니 참배부터 그만두라"는 서한을 보내 연설을 포기하게 했다. 정계를 떠난 뒤인 올해 4월 26일에도 당시 방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위안부 실체를 용기 있게 시인하라"고 촉구하는 기고문을 워싱턴 타임스에 냈다.

하이드 의원은 비뚤어진 반미를 부추기는 국내 일각의 움직임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2005년 반미단체들이 맥아더 동상 철거 운동을 불붙이자 그는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차라리 동상을 미국으로 보내 달라'는 편지를 보내 보호 조치를 촉구했다. 이듬해 8월 한국을 찾았을 때는 직접 인천의 자유공원을 찾아 맥아더 동상을 참배했다.

그러나 그는 32년 의정활동의 마지막 날인 지난해 9월 27일 '한.미 동맹은 위험에 처했나'라는 청문회를 개최할 만큼 한.미 관계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다. 그는 청문회에서 "한.미 동맹처럼 여러 전환기를 거치며 시련을 극복한 국가 간 동맹은 없다. 한국은 이제 둥지를 떠나 창공으로 높이 날아갈 준비가 돼 있다"며 한.미 동맹이 성숙하고 평등한 동맹으로 진화 중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그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미 행정부에 적극적인 대북 대화 정책을 촉구한 공로를 기려 지난해 11월 수교훈장 광화장을 수여했다. 부시 대통령도 이달 초 그에게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수여하면서 "약자와 잊힌 사람들의 옹호자"라고 칭송했다. 미 하원은 그를 기려 청사 H-139호실을 '헨리 하이드 룸'으로 명명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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