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나는 도전 한다 위험 안고 가는게 가장 안전한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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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배우가 자기 얘기를 책으로 냈다면? 대개 두 가지 중 하나 아닐까. 자신의 성공담을 은근히 자랑하면서 뻔한 공자님 말씀을 설파하든가, 아니면 옛날 고생하는 얘기를 강조하기 위해 신파조로 흐르던가.

뮤지컬 배우 이소정(34·사진)씨가 자전적 에세이 『브로드웨이의 노래를 들어라』(럭스미디어)를 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게다가 지금 한국은 뮤지컬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트렌드성 기획물이란 의심이 먼저 갔다. 그러나 막상 읽어 보니 예상과 달랐다. 쿨했다.

책은 2막으로 구성됐다. 1막은 어린 시절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4대 뮤지컬 중 하나인 ‘미스 사이공’의 여주인공 킴을 맡기까지 이소정 스토리로, 2막은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브로드웨이 명콤비 로저스&해머스타인에 대한 얘기다. 미국에서의 고생담도 실렸다. 유학 첫날 울었던 얘기며, 양파 냄새 때문에 교실 맨 뒤에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일화 등. 그런데 접근이 담담했다. “사람들은 내가 미국 대학 시절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을 거라 짐작하지만, 난 아르바이트하랴, 공부하랴, 뮤지컬과 관련 없는 시간을 꽤 보냈다.” “학교에서 하는 뮤지컬 오디션을 숱하게 봤지만 단 한번도 뽑히지 못했다.” 폼 잡기 보단 솔직한 데서 오는 공감이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직접 만나본 느낌도 책과 비슷했다. 확신에 찬 눈빛하며, 꼼꼼한 논리 전개 그리고 거침 없는 말투까지. 간혹 “책은 다 읽어 보셨나요?” “제가 지금 하는 말은 왜 메모 안 하시죠?”라고 반문해 기자를 당혹케 할 정도로.

왜 책을 썼을까.

“나의 진솔한 얘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과 무언가를 정리해야 할 때라서”라고 답이 돌아왔다. 그는 지금 뮤지컬 배우를 접고 가수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캐릭터가 되어 노래하는 게 아니라 나의 본 모습으로 노래하고 싶었다. 콘서트에선 공간 활용부터 레퍼토리 선정까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라고 책에서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음반은 죽고 뮤지컬은 뜨는 이 시대에 역행하는 건 아닐까.

“전 무언가를 추종하지 않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안전한 길로만 패스했다면 그런 창조적인 플레이가 나왔을까요? 위험을 안고 가는 게 역설적으로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부록처럼 책엔 그가 최근에 낸 첫 앨범이 딸려 있다. “드라마가 있는 발라드에 강하다”라는 그의 말처럼 7곡의 뮤지컬 넘버에선 사연 가득한 울림을 느끼게 된다. 음반을 들으며 책을 읽으면 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 랩된다. 마치 나만을 위한 콘서트처럼.

글=최민우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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