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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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53) 화류계 길꽃이야 밟으라고 피는 거.네게 무엇이 있기에 앞길이 바다 같은 젊은 아이와 목숨을 걸겠다는 거냐.그런 말이겠지.그걸 나도 모르지 않지.먼 바다를 바라보며 화순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침통하게 명국이 말했다.
『그 녀석이 너랑 그렇게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아니? 아저씨도 그 여자가 좋은 여자라고 하셨잖아요 하더구나.고개를 끄덕였지.그랬다고 했지.난 너를 나쁘다고는 안해.
』 병주고 약준다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화순이 이를 옥물었다.
먼 바람소리처럼 명국의 말이 들려왔다.
『다만,다만 말이다.이번만은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라는 거지.가는 그애를 붙잡거나 따라나서서는 안된다는 거다.』 화순은 말이 없이 바다쪽을 내려다보았다.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날리며 지나갔다.
『그래,그럴 수도 있겠거니 했다.피 뛰는 젊은 아인데.그런 마음에 불붙이기야 손바닥 뒤집기지 하고 생각했었다.그것까지는 그래도 참아주어야 한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요? 하고 화순은 마음 속으로 물었다.이 남자는 지금 길남이는 사람으로 알고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가.나는 세상에 좋은 것을 보고 좋다고해서도 안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함께 도망치겠다는 말을… 그 녀석도 어렵게 그 말을하더라만,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말이 안 나왔다.이럴 수도 있나 싶어서.』 화순이 명국을 내려다보았다.
『이럴 수가 있다니요.그게 무슨 잘못인가요?』 『남자 여자의정분이라는 게 뭔지 나도 안다.그것도 모르고 산 미물은 아니니까.그러나 아무리 그게 절절하다 해도 해야 될 일이 있고,해서는 안되는 건 있는 거다.그게 사람이다.』 화순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 넌 사람도 아니다 하시네요.』 『네가 누군지는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냐?』 이놈 입술에도 닿고,저놈 입술도 빨고…술잔처럼 살았다 그말인가요.혼잣말을 하는 화순의 입가에 언뜻차갑게 웃음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네가 어떻게 산 여자냐? 여염집 여자라면 내가 이런 말도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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