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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중임 개헌론 "속셈 뭘까" 일단 탐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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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야당은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대통령 중임제'개헌공약을 놓고 매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즉각적인 논평보다는 여권이 어떤 노림수를 가지고 있는지 속내를 파악하는 데 더 신경쓰는 눈치였다.

그동안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측근 비리와 천문학적인 대선자금 소요 등의 폐해를 들어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분권형 대통령제'개헌안을 총선 후 추진한다는 입장이었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국방과 외교를, 총리가 내치(內治)를 담당한다는 내용이다.

한나라당은 공식 반응을 자제한 채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을 덥석 물었다가 낭패를 본 기억 때문이다. 은진수 수석부대변인은 "盧대통령이 대선 전에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했는데 여권이 느닷없이 중임제를 내놓은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며 "돈 안 드는 선거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시급한 상황에서 왜 권력구조 문제를 들고나와 국민에게 혼란을 주느냐"고 했다.

또 한 당직자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큰 상황에서 대통령제의 근본을 수술하지 않은 채 장기집권을 하겠다는 노림수"라며 "권력분점을 기본으로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현실에 더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원론적인 반응만 보였다. 김영환 대변인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개헌을 들고나온 것은 의미있는 변화"라면서도 "총선 이후의 개헌문제에 대해서는 좀더 논의한 뒤 입장을 정리해 밝히겠다"고 했다. 개헌논의가 촉발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는 분위기다.

조순형 대표는 지난 5일 국회 대표연설에서 "현 정권의 폐단들이 권력구조 문제와 유관하다면 4.15 총선 후 이 문제(개헌)를 진지하게 검토할 생각"이라며 분권형 대통령제를 염두에 둔 개헌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학계와 시민단체는 개헌논의의 필요성은 수긍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정략적인 이용을 경계했다.

서울대 박세일 국제대학원 교수는 "그 자체로 논의해볼 만한 사안으로 언제 어떤 절차를 밟느냐가 중요하다"면서 "그러나 이를 선거용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김기식 사무처장도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이 그동안 많이 지적됐기 때문에 중임제 개헌논의는 필요하다"면서도 "그동안 개헌론이 정략적으로 이용된 측면이 많은 만큼 이를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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