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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10개월박찬호수기>上.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朴贊浩.21 LA다저스)가 31일 저녁 고국땅을 밟는다.「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으로 떠난지 꼭 열달.박찬호가 LA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기까지,또 마이너리그에서 치열한 경쟁등「아메리칸 드림」을 쫓는 국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았다.
귀국에 앞서 朴이 보내온 수기를 3회에 걸쳐 싣는다.朴은 국내에서 내년 1월중순까지 머무르며 한양대에서 합동훈련을 한뒤 다시 출국할 예정이다.
[편집자註] ◇글싣는 순서 (上) 메이저리그에서 마이너리그까지 (中) 나를 돌봐준 사람들 (下) 내가 꿈꾸는 진짜「아메리칸 드 림」 기대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가슴속에 담고 미국행 비행기를 탄 것이 지난해 12월31일이었으니 꼭 열달만에 다시 돌아오는 셈이다.
그 열달은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다.야구선수로서는 최고의 꿈인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랐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내 머리속에 남아있다.그날은 4월8일.상대는 메이저리그에서 최강팀으로 불리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였다.
내가 상대한 첫 타자는 4번 프레드 맥그리프.맥그리프에게 4구를 내줬다.다음타자 데이비드 저스티스도 4구.그러고나서 6번테리 펜들턴에게 2루타를 맞았다.
메이저리그 첫 등판에서 2이닝에 2점을 내줬지만 나는 기죽지않았다.많은 야구팬들은 89년 봉황기 고교야구대회에서 한게임에홈런 세개를 때린 박정혁(朴正赫.당시 휘문고)이란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하지만 그때 그 홈런 세개를 혼자 얻어맞으며 고집스레 마운드를 지켰던 투수가 누구였는지는 기억하는 팬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그 투수는 바로 나였다.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두들겨맞으면서 그때 기억을 떠올렸다.「주눅들 필요 없어.
더한 경험도 했는 걸…」나는 다시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4월14일 세인트루이스에서 한번더 마운드에 오른뒤 4월21일나는 마이너리그로 떨어졌다.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시작된 마이너리그 생활은 모든게 메이저리그에서와는 엄청난 차이가 났다.
땀에 젖은 유니폼을 입은채 서서 먹어야 하는 샌드위치, 6시간씩 걸리는 버스이동이 끝난뒤 곧바로 준비해야 하는 바쁜 일정등이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지금 와서 얘기하지만 나는 7월께 야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까지 했다.「이러다가 마이너리그에서 주저앉고 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을 잃고 만 것이다.
그때 나에게 힘이 돼준 사람들을 만났다.샌안토니오의 투수코치버트 후튼과 텍사스에서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한국인의 긍지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교민들이었다.특히 교민들의 열렬한 성원은 나로 하여금 「이들을 위해서라도 기필코 일어서야 된다」는 용기를북돋워주었다.
나는 결국 마이너리그 시즌 후반에 살아났고 시즌을 끝내고 LA다저스의 내년 스프링캠프 초청명단에 올랐다.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며 겪은 10개월의 경험은 올해 내가 벌어들인 1백만달러(약8억원)가 넘는 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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