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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총장납치 앞서 공관 사전답사-12.12 새로 드러난사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검찰의 12.12사태 수사결과 그동안 흑막에 싸여있던 사건 전모가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신군부측이 鄭총장 연행계획 재가(裁可)요청을 거부하는 최규하(崔圭夏)대통령을 위협,억지로 재가를 받아낸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12.12가 일부 군인들의「하극상에 의한 반란」으로명확히 드러났다.
◇12.12는 계획범죄 『12.12사태는 鄭총장 연행과정에서빚어진 우발적 충돌』이라는 신군부측의 주장은 이들이 11월 중순부터 모여 鄭총장 연행계획에 대해 협의했고 12월7일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씨가 회동,12월12일을 D데이로 결정한 사실 이 수사결과 드러나 거짓말임이 입증됐다.
全합수본부장은 鄭총장이 자신을 한직(閑職)으로 인사조치해 거세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뒤부터 치밀한 거사계획을 세웠다는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 계획에는 사건 당일 신군부측 지휘자들을 경복궁 30경비단에 집결,지휘계통을 일원화하고 全합수본부장 주관으로 만찬모임을열어 정병주(鄭柄宙).장태완(張泰玩)씨등 반대세력을 유인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崔대통령은 두차례 재가 거부 사건 당일 오후 全합수본부장은이학봉중령과 함께 총리공관에서 崔대통령에게『鄭총장이 김재규(金載圭)로부터 돈을 받는등 10.26사건에 연루된 혐의가 발견돼鄭총장을 연행조사하겠다』고 보고했다.
全합수본부장은 박정희(朴正熙)대통령 재임때 윤필용사건등 고위장성 수사의 경우 보안사령관이 바로 대통령에게 보고한 전례까지들먹이며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崔대통령은『현직 계엄사령관을 연행.조사하는 것은 국방부 장관의 보고와 의견을 듣고 신중히 처리할 사항』이라며 全합수본부장의 요청을 끝까지 물리쳤다.全합수본부장은 경복궁 30경비단장실로 돌아가 신군부측 장성들과 함께 집단으로 재차 대통령에게 재가를 요청했으나 다시 거부당하자 병력 동원지시를 내리는등 본격적인 거사(擧事)를 실행했다.
◇또 다른 하극상,盧국방 연행 합수부측은 또 대통령이 국방장관의 협의를 핑계로 재가를 피하자 노재현(盧載鉉)국방장관까지 연행하는 하극상을 연출했다.
盧국방장관의 연행은『朴대통령 시해사건 수사과정에서 할 수 없이 최소한의 병력을 동원했다』는 신군부측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신군부측은 13일 오전 2시40분쯤 국방부청사를 장악,청사내부를 수색한 끝에 지하 상황실■ 구에서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체포했다.
장관실로 연행된 盧장관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장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현확(申鉉碻)국무총리와 함께 국무총리 승용차를 타고 총리공관으로 출발했으나 오전4시10분쯤 보안사령부 정문에서혼자만 무장병력에 의해 강제 하차당했다.보안사령 관실에서 全합수본부장은『鄭총장 연행보고 문서에 결재하라』며 盧장관을 위협,서명을 받아냈다.
검찰조사에서 盧장관은『사후 결재를 하더라도 그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돼 문서에 서명했다』고 진술,신군부의 행위에 정당성이 없음을 입증했다.
◇보안사 감청으로 軍 통제 사건이 터지자 신군부측은 보안사 상황실을 철야 가동해 육본 지휘부측의 수경사 이동,육군 참모차장과 특전사령관의 9공수여단 병력 출동 지시,수경사령관의 26사단.수도기계화사단.30사단의 병력 출동 요청,김진기(金晋基)육본 헌병감의 합수본부장 체포 가능여부 타진등의 중요 정보를 미리 입수한것으로 밝혀졌다.
보안사는 감청을 통해 육군 정식 지휘계통의 움직임을 자세하게보고함은 물론 일부러 잘못된 지시를 내려보냄으로써 육본측의 대응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禹대령은 보안사측에서 쏜 총에 피격 신군부측은 또 총장연행과정에서 육본측이 먼저 총을 발사해 병력이동과 발포가 불가피했었다고 주장해 왔으나 검찰 조사결과 鄭총장을 연행하기 앞서 총장공관을 사전답사해 치밀한 준비를 한뒤 당일 鄭총장이 연행을 거부하고 국방장관과 대통령 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에 출동한 우경윤(禹慶允)육본 범죄수사단장은 경비병이 아닌 신군부측 수사관이 발사한 권총에 맞아 부상했다는 것이다.
〈鄭鐵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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