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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논술] 수능 등급제의 역설 … 이제는 논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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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험생들에게 논술 비상이 걸렸다. 올해 처음 실시된 수능 등급제에서는 1~2점 차로 등급이 엇갈릴 수 있는 데다 반영률이 예년보다 높아져 논술로 점수를 만회하려는 학생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논술 고득점을 위해 반드시 알아둬야 할 논제 파악 요령과 제시문 분석 방법을 소개한다. 김재인 김재인논술학원 대표강사와 우한기(이투스 논술강사) 청솔일이관지 논술연구모임 대표가 대학의 모의고사와 기출문제를 사례로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논제 분석 이렇게

 논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학생이 원고지에 써야 할 내용을 지시한다. 둘째 제시문과 더불어 출제자의 문제 의식 또는 출제 의도를 보여준다. 셋째, 제시문이나 자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 필요한 실마리와 관점을 제공한다.

 그러니 논제 분석이 잘못되면 엉뚱한 답안을 쓰게 돼 좋은 점수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문제지를 받으면 먼저 논제부터 파악하되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한다.

 최근 통합논술의 특징은 논제가 세분화되면서 요구 사항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전형적인 예가 아래의 2007학년도 서울대 수시2 논술 문제다.

 [가]와 [나]는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실려 있는 글이다. <삼국사기>를 다시 편찬한다고 가정하고, [가]의 사실에 대해서 [나]와 같은 성격의 글을 작성하라.(단, 아래의 조건을 만족시킬 것)

 ·호동과 김부식은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다. 어떠한 가치들이 갈등하는 문제인지 딜레마의 형태로 그 문제를 정의하라. ·호동의 대응과 김부식의 논평에 드러난 양자의 가치관과 가치 실현방법을 비교 분석하라. ·[나]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라. 많은 사람을 당혹하게 한 이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면서 논제 분석 방법을 익혀 보자. 참고로 [가]는 호동에 관한 두 일화가 [나]는 그에 대한 김부식의 논평이다.

 이 논제를 꼼꼼히 보면 학생이 따라야 할 여러 요구사항들을 발견할 수 있다. 순서대로 따라가 보자. 우선 ‘삼국사기를 다시 편찬한다’는 말은 새로운 역사 서술을 한다는 의미다. 즉 학생은 [가]의 사실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역사가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나]에 대한 평가를 포함하기 위해, [가]에 대한 김부식의 해석에 대한 찬반 또는 비판적 입장을 전개해야 한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다른 데 있다. 호동과 김부식은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것이 ‘딜레마의 형태’로 정의될 수 있는 가치들의 갈등 문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를 ‘가치들’의 갈등이 아닌, 하나의 가치를 실현하는 서로 다른 방식의 문제로 보면 아주 잘못된 해석이 되고 만다. 실제로 많은 수험생이 효(孝)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상의 차이를 묻는 문제로 단순하게 접근하는 바람에 호동과 김부식의 입장 차이를 잘못 설명하는 오류를 범했다.

 분명히 ‘가치들’ 사이의 딜레마라는 점이 명시된 점을 놓고 보면 효와 다른 ‘어떤 가치’가 충돌하며, 호동과 김부식은 가치관이 달라 서로 다른 가치를 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하면서 [나]를 보면 김부식이 택한 가치는 효였음이 확인된다. 그렇다면 호동은 어떠한가? [가]를 보면 호동은 효를 포기하고 왕실의 안녕을 택한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국가 또는 공동체의 안위를 우선한 셈이다. 호동은 ‘아버지’ 왕에 대한 효보다 아버지 ‘왕’에 대한 충(忠)에 더 가치를 두었던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봐야 [가] 전체가 즉, 낙랑공주에게 효를 저버리라고 한 호동의 행위나 호동의 자살을 일정한 맥락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 문제는 논제 분석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다. 이해·분석력과 창의력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좋은 문제이므로 반복해 이 같은 유형을 익혀두면 실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김재인 김재인논술학원 대표강사

제시문 분석 이렇게

 학생들은 흔히 제시문에서 정답을 찾으려 한다. 아는 게 없으면서 정답을 찾으니 독해가 힘들 수밖에 없다. 찾을 대상은 정답이 아니라 ‘문제’다. 출제자는 학생이 고민해야 할 문제를 던진다. 이 문제를 찾는 데 집중하면 의외로 쉽게 읽힌다.

 독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요약하기’와 ‘연관 찾기’다. 독해는 요약에서 출발한다. 요약은 글의 뼈대를 추리는 일이다. 모든 글은 근거와 주장, 원인과 결과라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뼈대들을 자기 표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요약이다. 유념할 것은 주장이나 결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근거와 원인을 찾는 일이다. 이를 발견해야만 제시문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제시문 간의 연관을 파악할 때는 앞서 한 요약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각 제시문에 나타난 근거→주장, 원인→결과를 서로 비교하면 제시문 간의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주장은 같은데 근거가 다르거나 결과는 같은데 원인이 다를 수 있다. 반대로 같은 근거나 원인에서 다른 주장이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게 바로 공통점과 차이점이다. 제시문들 간의 연결 유형을 보면 A제시문이 B제시문의 원인이나 근거가 되기도 하고, A와 B가 대립하거나 C제시문이 A, B를 통합 설명하기도 한다.

 여기서 어려운 작업이 일반(또는 추상)과 구체 사이의 연관을 찾는 일이다. 특히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제시문들은 많게는 6~7개가 주어진다. 그러나 전체를 꿰뚫는 핵심 원리만 찾으면 제시문의 양은 문제 되지 않는다.

 나아가 전체 제시문을 한 편의 글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꼭 글로 쓸 필요는 없다. 발견한 원리를 중심으로 제시문들을 인과관계에 따라 화살표로 연결하면 된다. 즉 글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A는 이렇고, B는 저렇고 따라서 결국 C는 요렇구나’라는 식의 흐름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를 마치면 논술은 90% 이상 끝난 셈이다.

 최근 자주 나오는 그림·도표·그래프 이해도 중요하다. 그림이 주어진 문제는 논제와 제시문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연세대 2005학년도 정시 논술의 경우 노인의 인생관이 담긴 제시문을 이해해야만 티치아노 그림 ‘인간의 세 시기’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림 속에서 여인의 유혹에 잡힌 젊은이의 모습은 논제가 요구하는 욕망의 문제와 예이츠의 시 ‘나이 들면 철이 드는 법’ 을 연결해야 이해된다. 전통놀이와 현대 스포츠를 비교한 한양대 2007학년도 수시1 논술도 제시문을 분석해야 그림을 해석할 수 있다. 전통놀이가 ‘개인의 재발견’에 기여한 반면, 현대놀이는 ‘공동체의 재발견’에 기여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도표와 그래프 읽기도 마찬가지다. 논제와 제시문 간의 연관 속에서 그 특징을 잡아내야 한다. 중앙대 2007학년도 수시 문제에서 보듯 주제를 이루는 큰 내용들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해야 핵심을 찾을 수 있다. 자료와 제시문을 연관 지어 읽어야 할 기출 유형으로는 서강대 2007학년도 수시2-2 논술(경제경영학부)을 꼽을 수 있다. 표만 보면 북한 식량난의 원인을 낮은 생산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지만, 제시문을 함께 읽으면 북한의 자급자족체제가 주원인임을 알 수 있다. 반면 남한은 적은 생산량을 수입으로 대체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외대 2007학년도 수시1 프런티어형 문제도 제시문과 그래프를 함께 분석하는 연습용으로 권장하고 싶다.

 우한기 청솔일이관지 논술연구모임 대표·이투스 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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