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근로빈곤층 지원책 혁신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우리 사회는 다양한 경제·사회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이제는 다양한 문제가 응축돼 있는 근본 문제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고,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즉 근로빈곤층 문제다. 근로빈곤층 증가는 이들이 부양하는 노인과 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자녀들을 상대적 박탈감과 빈곤의 대물림이라는 위험에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빈곤의 증폭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선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양질의 일자리를 대량으로 창출해 소득 불평등과 빈곤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느냐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노동시장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향후 우리 사회가 양질의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을지, 실직자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양질의 일자리로 재진입할 수 있을지 반문하게 한다. 이는 근로빈곤층 문제가 낙관론만으로 해결되기 힘들다는 점을 암시한다.

현실적으로 근로빈곤층의 경제적 자립을 촉진하기 위해선 취업 기회 여건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두어야 한다. 취업을 통해 충분한 소득을 벌 수 없다면 생계급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실직상태에 있다면 직업훈련이나 취업알선을 통해 취업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근로빈곤층으로 하여금 일하려는 의지를 갖도록 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제대로 설계되지 않는다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지난 수년간 시행돼 온 자활사업이 그런 예다. 자활사업은 생계급여 제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 때문에 참여자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기보다 복지제도에 의존하게 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자활지원 제도를 개편해 근로빈곤층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는 근로빈곤층을 위한 소득보장 제도와 자활지원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다음 세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춰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먼저 기초생활보장제도와의 관계를 재정립해 소득보장 기능이 자립지원 기능을 약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인적자본 개발 및 취업연계 프로그램을 대폭 보강해 빈곤층이 노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현재 실시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공급정책과의 연계를 통해 취업하기 힘든 실직빈곤층에게 안정된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자활급여법을 제정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앞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근로빈곤층을 지원하는 방안과 관련 제도와의 관계를 정돈하는 방안이 보완돼야 한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근로소득보전제도·사회적기업육성법 등 관련 제도와의 관계 정비는 정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장기적 안목을 갖고 추진해야 할 과제다.

노대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