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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도 신용등급 매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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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 경제는 여전히 중소기업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활력은 한국 경제발전의 필수요건인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우수한 경영진과 인재 유치의 어려움, 잠재 고객 및 공급업체와의 관계 구축 등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어려운 상황에 있다. 특히 해외시장에선 더욱 심각하다. 채권 및 주식시장 등을 통한 효율적인 자금 조달 역시 문제다.

그러나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기업의 자금 공급원으로서 국내외 자본시장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시장을 중소기업과 연계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정보를 더욱 개방하고 공유하는 데 있다. 정부 정책은 중소기업에 대한 인위적인 보조금·보증보다 중소기업의 투명성 및 정보 공개, 재정 원칙을 확립해 이를 통한 신규 장기 자금 접근성을 높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채권자·투자자 입장에서는 중소기업 투자 결정에 도움이 될 정보 및 벤치마크를 필요로 한다. 현재 중소기업 정보는 대부분 은행권이 갖고 있어 중소기업 투자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은 중소기업의 신용도 및 투자 리스크에 대한 정보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중소기업 자금 시장은 제 역할을 충분히 못하고 있다.

효율적이며 풍부한 자금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해선 기업공시 기준을 개선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독립적인 재무 정보 및 투자 리서치, 신용등급이 필요하다. 그러면 재무 투명성 제고를 통해 많은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공급업체·고객과의 협상에서 나은 조건을 이끌어내고, 인재 확보 및 시장 지위 향상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의 해외 경험은 이를 잘 입증했다.

현재 증권사들의 주식 리서치에서 중소기업은 소외돼 있다. 이런 상황은 독립적인 주식 리서치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 중소기업은 주식시장 접근성을 확대할 수 있어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일관성 있는 신용 리서치가 발간된다면 채권자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신규 고객에게 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중소기업에 주거래 은행 이외의 자금조달원이 될 수 있다. 신용 리스크에 대한 투명성 제고를 기반으로 중소기업 투자 경쟁이 가속되면 중소기업에 대한 금리 책정도 효율성이 높아지고, 합리적인 자본 배분이 가능해진다.

동시에 실질적인 신용 벤치마크 역할을 할 수 있는 신용등급이 중소기업에 폭 넓게 제공된다면 중소기업이 국내외 채권시장에서 장기 자금을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채권 투자자들은 투자에 앞서 기업의 부도 리스크를 파악할 수 있는 공인된 벤치마크를 필요로 한다. 또한 고수익 자산에 대한 세계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수요를 감안할 때 채권시장은 한국 등 아시아 중소기업의 광대한 자금 조달처가 될 수 있다.

은행 또한 자본시장에서 추가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보유한 중소기업 자산에 대한 독립적인 신용 벤치마크를 폭넓게 활용해 금융시장에서 중소기업 대출 포트폴리오를 유동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은행들은 이를 통해 기존 대출자산에 대한 규제자본 및 경제자본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신규 중소기업 대출 여력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중소기업 자금시장이 개방되기 위해선 각자 역할이 있다. 중소기업은 기업공시 및 지배구조 기준을 높여야 한다. 정보 및 리서치 제공업체는 중소기업·채권자·투자자의 요구에 맞는 상품·서비스를 개발하고, 중소기업이 세계 자본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투명성 향상 및 독립적인 재무 정보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경제적 보상은 매우 심대하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채정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tandard & Poor’s) 한국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