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 기업의 자금 공급원으로서 국내외 자본시장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시장을 중소기업과 연계시킬 방법은 무엇일까.
해답은 정보를 더욱 개방하고 공유하는 데 있다. 정부 정책은 중소기업에 대한 인위적인 보조금·보증보다 중소기업의 투명성 및 정보 공개, 재정 원칙을 확립해 이를 통한 신규 장기 자금 접근성을 높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채권자·투자자 입장에서는 중소기업 투자 결정에 도움이 될 정보 및 벤치마크를 필요로 한다. 현재 중소기업 정보는 대부분 은행권이 갖고 있어 중소기업 투자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은 중소기업의 신용도 및 투자 리스크에 대한 정보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중소기업 자금 시장은 제 역할을 충분히 못하고 있다.
효율적이며 풍부한 자금 공급원을 확보하기 위해선 기업공시 기준을 개선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독립적인 재무 정보 및 투자 리서치, 신용등급이 필요하다. 그러면 재무 투명성 제고를 통해 많은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중소기업은 공급업체·고객과의 협상에서 나은 조건을 이끌어내고, 인재 확보 및 시장 지위 향상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의 해외 경험은 이를 잘 입증했다.
현재 증권사들의 주식 리서치에서 중소기업은 소외돼 있다. 이런 상황은 독립적인 주식 리서치를 통해 해소될 수 있다. 중소기업은 주식시장 접근성을 확대할 수 있어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일관성 있는 신용 리서치가 발간된다면 채권자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신규 고객에게 자금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중소기업에 주거래 은행 이외의 자금조달원이 될 수 있다. 신용 리스크에 대한 투명성 제고를 기반으로 중소기업 투자 경쟁이 가속되면 중소기업에 대한 금리 책정도 효율성이 높아지고, 합리적인 자본 배분이 가능해진다.
동시에 실질적인 신용 벤치마크 역할을 할 수 있는 신용등급이 중소기업에 폭 넓게 제공된다면 중소기업이 국내외 채권시장에서 장기 자금을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채권 투자자들은 투자에 앞서 기업의 부도 리스크를 파악할 수 있는 공인된 벤치마크를 필요로 한다. 또한 고수익 자산에 대한 세계 투자자들의 지속적인 수요를 감안할 때 채권시장은 한국 등 아시아 중소기업의 광대한 자금 조달처가 될 수 있다.
은행 또한 자본시장에서 추가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보유한 중소기업 자산에 대한 독립적인 신용 벤치마크를 폭넓게 활용해 금융시장에서 중소기업 대출 포트폴리오를 유동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은행들은 이를 통해 기존 대출자산에 대한 규제자본 및 경제자본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신규 중소기업 대출 여력을 확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중소기업 자금시장이 개방되기 위해선 각자 역할이 있다. 중소기업은 기업공시 및 지배구조 기준을 높여야 한다. 정보 및 리서치 제공업체는 중소기업·채권자·투자자의 요구에 맞는 상품·서비스를 개발하고, 중소기업이 세계 자본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투명성 향상 및 독립적인 재무 정보를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경제적 보상은 매우 심대하고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채정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tandard & Poor’s) 한국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