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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발목 잡는 게 균형발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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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오늘날 시장에서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공정한 경쟁을 북돋우고, 이로부터 낙오한 자가 다시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이것이 효율성과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길이다.

어떠한 경쟁에서도 앞서 나가는 자와 뒤처지는 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따라서 앞선 자를 격려하고 뒤처진 자를 끌어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앞선 자를 격려해 주지는 못할망정 방해하는 데 온갖 힘을 쏟고 있다. 교육 정책은 우수한 학생의 학습 의욕을 꺾고, 주택 정책은 비싼 주택을 소유한 자를 죄악시하고 있다. 성적이 나쁜 학생의 학습 능력을 끌어올리고, 무주택 영세민의 주거복지를 높이는 일이 진정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인데도 말이다.

그동안 균형발전 정책도 수도권 규제를 통해 앞서 나가는 자의 발목을 잡는 데 주력해 왔다. 이에 비해 제2기 국가균형 발전정책은 뒤처진 자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수도권 규제에 따른 반사이익에 의존했던 과거의 간접적인 방법에 비하면, 낙후 지역 입지 기업에 직접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하는 정책은 실효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분명 발상의 전환이다.

그렇다면 이에 상응해 수도권의 손발을 묶어 놓았던 각종 규제를 풀어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럼에도 수도권 규제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반쪽짜리 발상의 전환으로 인해 오히려 수도권은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규제 받아야 하는 이중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정도를 결정하는 지역 분류 방식이다. 정부는 올 9월 19일 공청회를 통해 전국의 234개 시·군·구를 지역 발전도에 따라 4개 등급으로 분류한 시안을 발표하고, 낙후 지역일수록 법인세 감면 등의 혜택을 더 많이 부여하기로 했다. 그동안 학계 일부에서는 지역 발전이나 낙후 정도를 시·도의 광역자치단체가 아닌, 시·군·구의 기초자치단체별로 나눠 평가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서울·인천·경기도의 수도권에도 못사는 지역이 있고 비수도권에서도 잘사는 지역이 있으므로 수도권 대 비수도권이란 이분법에서 벗어나 균형발전 정책 대상을 시·군·구 단위로 세분화하자는 취지였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전국 시·군·구를 대상으로 지역 분류를 시도한 것은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조치다.

그러나 막상 지역 분류 과정에서 수도권의 모든 시·군·구는 원래 평가된 등급에 비해 한 등급씩 더 발전된 지역으로 분류됐다. 지역 분류의 세분화 취지와는 달리 수도권의 모든 시·군·구가 단지 수도권 행정구역에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다시 한번 도매금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낙후 지역에 대한 정부 지원은 지역 간 형평성의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글로벌경쟁 시대에 중국의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권, 일본의 도쿄(東京)권 등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수도권을 지원하기는커녕 규제에 있어 이중적인 차별을 하는 것은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일이다. 정부는 낙후 지역에 대해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수도권에 대해서도 지원은 못할망정 발전을 막고 있는 족쇄만이라도 풀어 주기를 바란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