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海 긴장-南禎鎬특파원 쿠웨이트서 1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라크군 쿠웨이트 국경으로의 대규모 병력이동과 미국의 강경대응으로 걸프해에 또다시 긴장의 파고가 높아가고 있다. 이라크군의 철수로 일단 한고비는 넘겼지만 다시 침공위협 대상이 된 쿠웨이트의 표정은 더 어둡다. 남정호 브뤼셀 특파원을 쿠웨이트 현지로 급파했다.(편집자주) 걸프해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은 쿠웨이트 입국전부터 느낄수 있었다. 로마에서 쿠웨이트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기관총으로 무장한 이탈리아 보안요원들이 가방밑까지 샅샅이 훑어 내렸다.
이라크의 테러를 우려한 쿠웨이트정부의 특별요청에 의한것이라는보안요원의 설명이다.
쿠웨이트.이라크 사태가 터진지 4일째인 11일, 열기에 휩싸인 쿠웨이트시내는 조금씩 평정을 되찾고 있다.
8만 이라크군의 국경이동 소식이 전해진 직후 일어났던 물.석유등 생필품에 대한 사재기소동도 어느정도 가라앉았다.
빵의 일종으로 쿠웨이트인의 주식인「코브츠」는 이틀전만해도 1인당 세봉지 밖에 팔지 않았으나 현재는 제한없이 판매되고 있다. 달러를 바꾸려고 은행에 몰렸던 인파도 눈에 띄게 줄었다.
물론 쿠웨이트 앞바다에 떠있는 거대한 美 항공모함과 전함,그리고 그 위에 적재돼 있는 최신형 전투기와 크루즈 미사일 덕분이다. 이라크의 철군발표 후에도 쿠웨이트인들의 얼굴에선 여전히공포감을 읽을수 있다.
『비록 후세인이 철수한다고 발표했지만 우리는 믿을수 없다.4년전에도 그는 쿠웨이트를 침공하지 않는다고 공언하고서도 우리땅을 더럽혔다』고 공보처 직원 아델 알야신은 말했다.과연 이라크가 순순히 물러날지 의혹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 이다.
특히 시내 건물벽에 남아있는 총탄자국처럼 90년 8월이후 8개월간의 이라크 치하에서 겪었던 악몽이 이곳 사람들의 가슴에는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쿠웨이트인중 4분의 1이,그중에서도 특히 여자들이 아직도 걸프전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한 외신은 전하고 있다.고문은물론 아랍세계에서는 가장 금기(禁忌)로 여기는 강간을 이라크 군인들이 자행했기 때문이다.91년 쿠웨이트 수복 직후 돌아온 한 한국외교관은『공항에서 여자들의 속옷이 널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고 목격담을 전한다.
만일 이번에 전쟁이 재발하면 90년 당시보다 훨씬 대규모의 파괴행위가 자행될 것으로 쿠웨이트인들은 우려하고 있다.이라크쪽에서 금수(禁輸)조치로 받은 고통이 모두 쿠웨이트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따라서 반드시 보복하리라 믿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하려 한다는 소문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다. 전쟁에 대한 공포로 기묘한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쿠웨이트의 식당에 갑자기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는것이다.먹는 행위를 통해서라도 공포를 잊으려는 자연발생적인 현상일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