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보수와 舊보수의 공존 가능할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6호 27면

언론, 유권자, 정치인들은 요즘 대선 정국에 뒤늦게 뛰어든 이회창씨가 불러올 여러 파장들을 살피느라 분주하다. 필자는 여기서 퀴즈 한 가지를 내보려 한다. 이회창씨의 때늦은 출마가 던져준 다음의 숙제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①이회창씨가 과연 현재의 20% 선의 지지율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를 예측하기 ②한나라당의 경선 과정에 참여했던 당원 이회창씨가 독자 출마했으니, 이를 방지하기 위한 이회창 방지법의 도입 여부 맞히기 ③이회창씨의 등장으로 고무된 구보수와 신보수의 균열 또는 공존의 가능성 점치기.

필자는 이회창씨의 무소속 출마가 일깨운 가장 큰 고민거리는 ③번, 즉 구보수와 신보수로 분열된 한국 보수 세력의 정체성의 문제라고 본다. 실은 이명박 후보가 50%대의 고공행진을 지속할 때부터, 보수 세력이 안고 있는 최대의 과제는 바로 이 문제였다.

이회창씨의 독자 출마는 다만 기왕에 안고 있던 문제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50여%에 이르렀던 이명박 후보의 지지는 30% 내외로 추정되는 중도성향의 신보수와 15~20%의 구보수의 불안한 공존을 통해 유지되었었다. 이 같은 불안정한 공존은 이
회창씨의 독자 출마를 계기로 일시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단기적으로 이명박 후보가 기존의 입장보다 다소 강한 톤의 대북정책을 내놓거나, 혹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렬하게 비판함으로써, 구보수들을 다시 한나라당으로 돌아오도록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실 이명박 후보는 현 정부가 추진해 온 2·13 합의에 기초한 비핵화 프로세스를 결정적으로 비판한 적은 별로 없다. 또한 이 같은 기존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창의적인 대안을 내놓은 적도 없다는 점에서, 다소간 낙관적 방치를 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의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구보수와 신보수의 공존과 결합이라는 보수정치의 장기적인 과제는 여전히 남게 될 것이다. 수도권의 30, 40대 유권자가 주축이 된 탈지역주의적 신보수와 50, 60대 유권자와 영남 유권자가 핵심을 이루고 있는 구보수의 공존은 가능한가?

신보수와 구보수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전선은 물론 대북정책이다. 이명박 후보가 내세우는 대북정책은 분명 기성보수의 대북강경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명박 후보의 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경제교류와 확대를 통해 북한경제를 회생시키고 이를 통해 남북 평화공동체로 발전해갈 수 있다는 입장에 서있다. 결국 보수 세력의 대북관은 구보수의 도덕주의 대 신보수의 경제주의로 분열돼 있는 셈이다.

이 점에서 신보수의 앞길은 실로 험난하다. 안으로는 강경 보수주의자들의 도덕주의적 대북관을 적절하게 수용하면서 동시에 이들의 공세적 성향을 통제해야 한다. 또한 밖으로는 핵을 가진 북한을 비핵화로 이끌어야 하고 나아가 북한을 경제협력과 평화공존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키워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제에 비추어 이명박 후보가 갖고 있는 생각은 지나치게 경제중심적 접근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신보수와 구보수가 충돌하는 또 다른 이슈는 국제질서에 대한 시각이다. 이들 보수 세력은 공통적으로 국제정치에서 힘의 관계를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국제관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정은 복잡하다. 구보수가 미국 중심의 질서 하에서 친미주의를 고수하는 반면, 신보수는 미국의 힘뿐만 아니라 중국의 부상에 따른 동아시아 권력관계의 변화를 아울러 눈여겨보고 있다. 따라서 신보수와 구보수는 미-중 관계의 변동에 따라 언제든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을 안고 있다.

집권 준비가 부족했던 진보세력이 주도한 지난 10년이 적지 않은 혼란과 갈등을 유발
했던 경험을 돌이켜보면, 보수 세력의 내적인 공존의 문제가 단지 보수 세력만의 숙제가 아닐 수도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