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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레저] 저 산 너머 샹그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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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설산 뒤쪽이 샹그리라로 불리는 중톈이다.

몇 해 전 중국은 옛 티베트 땅인 중톈의 행정명칭을 ‘샹그리라’로 바꿨다. 샹그리라. 늙음과 병듦, 그리고 죽음이 없다는 신비의 낙원이다. 대체 이곳이 어떤 땅이기에 그런 찬란한 이름을 붙였을까. 물론 거기에는 티베트의 독립 움직임에 쐐기를 박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포석이 깔려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 이름 넉 자는 살 떨리는 매력이다.

 ‘낙원’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고 도도했다. 비행기로 간 쓰촨성의 청두가 출발점이다. 여기서 윈난성의 리장까지 5000여 리 길을 지프로 돌고 돌아간다. 중국에서 가장 험한 길이다. 아직 국내에 소개된 여행상품도 없을 뿐 아니라 지면으로 소개된 적도 없다.

 길은 들머리부터 허공에서 몸을 비튼다. 바로 차마고도(茶馬古道)다. 아득한 옛날 티베트의 말이 오고, 한족의 차가 설산을 넘어갔던 그 길. 차(茶)는 그들에게 사치가 아닌 생명수였다. 추운 산록에 살며 야크와 유제품을 주식으로 하는 티베트인에게 차는 식물성 비타민을 얻기 위한 절대 품목이었다. 그들의 생사를 넘나든 교역은 실크로드보다 기원이 앞선단다.

 라마만이 오를 수 있었던 해발 4000, 5000m의 고지에는 신들의 자취가 역력했다. 수백 개의 산을 넘었다. 하루를 꼬박 달려도 인간이 만든 것이라곤 길뿐이었다. 길은 하늘에 닿았고 풍광은 위대했다. 티베트인들의 영산(靈山)인 매리설산은 좀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고산증세는 내내 이방인을 괴롭혔다. 그 길을 여드레 동안 내달렸다.

 샹그리라는 신의 땅에서 신의 말씀을 좇고 살아가는 장족의 순박한 얼굴들에도 있었다.

글·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샹그리라(Sangri-La)

영국 소설가인 제임스 힐튼이 1933년 출판한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서 지상낙원으로 묘사한 마을이다. 이후 사전에도 등재되어 이상향을 의미하는 일반 통용어로 사용된다.

캉팅에서 저둬산 가는 구름을 뚫고 오른 길. 하늘이 있어야 할 자리에 다시 산이다. 이른바 차마고도다. 지프로도 헐떡이며 오른 하늘 길. 아득한 옛날 차를 싣고 사람이 넘나들던 길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까마득히 길을 내달리면 그 끝에 에베레스트가 있다.

마을 고산분지의 신두초 초원은 모성 어린 능선을 만들어내 사람들을 하늘 맞닿은 땅에 살게 했다. 한 무리의 야크 떼가 지나간다. 바람이 백양나무 우두커니 선 초원을 스쳐간다. 하늘 열린 사이로 내려온 빛도 들과 마을을 비추며 지난다.

누가 굳이 가르쳐 줄 것도, 정해줄 것도 없이 구름에 잠긴 매리설산 정상을 한 식경만 바라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신의 땅 ‘샹그리라’ 임을.

사람 야크 똥을 줍는 아낙이 지나는 나그네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자시들레”.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기원의 말이다. 하룻밤 묵고자 들른 민가의 어린 처녀도, 칭커(쌀보리의 일종으로서 발효하면 술이요, 구우면 빵이요, 바치면 공양미가 된다)를 산더미처럼 짊어진 아낙도, 경운기를 타고 나들이 가는 가족들도 하나같이 “자시들레”하며 복을 빌어 준다. 뜨내기의 눈엔 힘든 삶의 모습이지만 그들의 표정엔 가늠할 수 없는 고요가 배어 있다.

타르초 구름마저 쉬어 넘어야 할 언덕배기엔 어김없이 타르초가 하늘을 우러른다. 티베트 사람들은 타르초 펄럭이는 소리를 ‘말이 발굽을 세워 설산을 달리는 소리와 같다’고 한다. 또 ‘바람이 경전을 읽고 가는 소리’라니 말씀은 바람을 타고 하늘에 오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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