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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ESTATE] '대박나는 땅'이라더니 … 땅 치는 투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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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서울 송파구에 사는 주부 임모(40)씨는 요즘 부부 싸움이 잦다. 4년 전 1억5000만원을 주고 매입한 강원도 양양 땅(2800㎡) 관련 소송 때문이다. 2003년 투자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한 기획부동산업체의 말만 믿고 땅을 산 게 문제였다. 땅값이 오르지 않고, 업체가 내세운 개발계획도 거짓으로 판명 나자 임씨는 법원에 분양대금 반환소송을 냈다. 그러나 임씨가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분양대금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이 업체의 사장이 재산을 빼돌린 상태에서 구속됐기 때문이다.

3∼5년 전 토지시장 열기에 편승, 대박을 노렸던 ‘묻지마 투자’의 후유증이 본격화되고 있다. 변호사 사무실에는 기획부동산업체의 유혹에 넘어가 돈을 날린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법무법인 동아는 최근에만 5∼6건의 땅 사기분양 관련 소송 상담을 해 줬다. 한누리는 현재 피해자들을 대신해 2건의 분양대금 반환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법무법인 동아 조재현 변호사는 “5000만∼1억원을 투자한 중산층·서민들이 대부분”이라며 “투자 지역도 고성·가평·해남 등으로 다양하다”고 말했다.

◆대박 노리다 투자금 잠겨=토지시장 활황기(2001∼2005년)에 땅을 산 투자자들의 속앓이가 심하다. 분양 당시 업체가 투자자를 끌어 모으기 위해 내세웠던 수익률·개발계획 등이 3∼6년이 지난 요즘 거짓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이모(34)씨는 요즘에도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2004년 매입한 강원도 고성군 임야(825㎡) 때문이다. 그는 금강산 관광이 본격화되면 주변이 개발돼 서너 배의 수익은 거뜬하다는 분양업체의 꾐에 넘어가 결혼자금으로 모아 둔 목돈을 선뜻 투자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주변은 개발될 기미가 없고, 땅값도 그대로다.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공유지분 형태로 등기돼 되팔기도 어렵자 이씨는 최근 땅 분양업체 대표를 형사 고발했다.

하지만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원고가 이기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계약과정에서 현장확인 등을 소홀히 한 원고 측의 잘못도 함께 따지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상운 이성문 변호사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는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잘못을 입증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복잡한 절차와 비용 때문에 처음부터 소송을 포기하고 자체 문제 해결에 나서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기도 성남 분당 신도시에 거주하는 이모(45)씨는 요즘 생업(보험업)을 제쳐놓고 관공서를 드나드는 일이 잦다. 2003년 그는 P개발업체로부터 펜션단지 허가를 받아 준다는 조건으로 다른 투자자 50여 명과 함께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밭 2만3000㎡를 매입했다.

개발허가에 어려움을 겪던 이 업체 대표 한모씨가 잠적하자 이씨는 다음해 12월 50여 명의 투자자와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나아진 게 없다.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서다. 이씨는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토목업체 등이 땅에 권리를 설정하는 바람에 처분조차 어렵다”고 전했다.

전원주택 전문업체인 임광이앤씨 임수만 상무는 “2001년 이후 연평균 33만㎡(약 10만 평) 이상의 땅을 쪼개 판 업체가 수두룩하다”며 “1인당 660㎡씩 계산해도 전체 피해자는 10만∼20만여 명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개발 가치가 거의 없는 땅에 잠긴 돈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사기 혐의로 기소돼 형이 확정된 김현재 전 삼흥그룹 회장이 계열사를 통해 쪼개 판 땅만 20여 곳, 5318억원인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지기도 했다.

◆쪼개 파는 땅, 사지 말아야=전문가들은 땅 사기분양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한 필지의 땅을 여러 사람이 같이 소유하는 공유 지분 형태로 쪼개 파는 곳은 가급적 분양받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업체가 내세우는 개발계획만 믿지 말고 현장을 방문하거나, 지방자치단체에 문의하는 등 이를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한다.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법무사 명의의 ‘책임 분할 보증서’를 발급하는 업체도 조심할 필요가 있다. 토지분할허가제로 투기지역 등에서는 땅 분할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OK시골 김경래 사장은 “‘회사 보유 필지 최종 마감분’ 등의 문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김영태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기획부동산=큰 땅을 싸게 산 뒤 여러 필지로 쪼개 텔레마케팅 등을 통해 비싸게 파는 업체다. 대부분 허위·과장 개발계획 등을 내세워 땅을 공유지분 형태로 팔기 때문에 피해를 당하는 투자자가 많다. 이런 땅 가운데 쓸모없는 땅이 적지 않다. 정부는 기획부동산업체로 인한 땅 사기분양 사례가 늘자 부동산개발업 관리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제정, 11월 18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은 땅을 쪼개 파는 업체도 정부에 등록하도록 했다.

땅 사기 분양 소송 이렇게

-소송 전에 투자자를 고의로 속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홍보물 등 확보해 둬야
-분양업체 대표 등이 재산을 빼돌리기 전에 미리 처분금지가처분 등 신청해 둬야
-원고 간 갈등이나 의견 불일치 등이 심하면 소송 진행에 어려움 많아 주의해야
-사기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 못 하면 승소 어려울 수도 있어 쪼개 파는 땅은 피해야
-부동산개발업법 시행(18일) 이후에는 정식 등록업체 통하는 게 비교적 안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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