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IReport] 국민이 자초하는 '큰 정부 - 작은 시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요즈음 리더십 얘기가 부쩍 기승을 부린다. 나라가 어지러워서 그런 모양이다. 누군가 특출한 인물이 나와 이 어지러운 세상을 다시 잘 돌아가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해서 리더십에 이렇게 목을 매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 때문인지 바람직한 지도자에 대한 설문조사가 잦다.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시하는 인물,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을 꾀할 인물, 새 일을 벌이기보다는 맡은 바 책무를 잘 수행하는 실용적 인물, 그리고 법치에 대한 신념과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국민이 원한다는 조사 결과가 대부분이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굉장한 인물을 원하는 것이다. 지도자라는 게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중에 하나가 지도자로 나서는 것일 텐데도, 보통의 우리와는 다른 심성을 가지고 우리네 수준을 크게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도자와 정부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한다. 크든 작든 무슨 현안이 생길 때마다 지도자나 정부 타령이다. 지도자나 정부의 잘못도 아니고, 그들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조차 지도자나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들 말로는 ‘큰 정부와 작은 시장’보다는 ‘작은 정부와 큰 시장’이 좋다고 하지만 실제론 큰 정부, 더 많은 정부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정부더러 하라는 건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보다 민간이 더 잘할 수 있고 시장의 거래를 통해 더 적은 자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까지 정부더러 해결하라면 그건 문제다. 우리처럼 모든 걸 지도자에게 기대하고 매사에 정부더러 해결하라고 하면, 지도자나 정부로서는 그 무능이나 비효율을 ‘발휘’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빌미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도자나 정부가 국민이 원하는 많은 일을 해내려면 사람과 돈과 제도가 필요하다. 국민이 원하고 지도자가 해내겠다는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공무원이 국민으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두고 또 더 많은 규제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 지도자나 정부가 원하든 원치 않든, 국민의 여망에 따라 국민에게 부담스럽고 국민을 옥죄는 정부, 즉 ‘큰 정부’가 등장하는 것이다.

돈 많이 쓰고(그것도 비효율적으로 쓰고), 세금 부담이 크고(그것도 위헌적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세금 부담을 지우고), 규제 많고(그것도 공무원 힘 쓰는 것 말고는 실리도 명분도 없는 규제가 많고), 공무원이 많은(그것도 월급과 연금으로 민간보다 훨씬 나은 대우를 받는 공무원이 많은) ‘큰 정부’, 그 큰 정부의 ‘원죄’가 국민에게 있다는 얘기다. 과도한 국민 기대의 결과가 날로 늘어나는 재정 적자와 국민 부담과 우리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는 큰 정부와 위축된 민간 경제인 것이다.

새로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고 경제를 살리자는 지도자였으면 좋겠다. 국민을 위한다고 무엇을 해 주거나 경제를 살린다고 경제를 끌고 가려는 지도자이기보다는 국민이 제 할 일을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편하게 해 주고, 경제가 시장경제 속에서 활발하게 돌아가도록 해 주는, 그런 지도자이기를 바란다.

그런 지도자가 돼야 국민더러 ‘이런 식으로 벌어라, 저런 식으로 써라’ 하지 않을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그런 지도자가 있어야, 기업더러 ‘사업을 이런 식으로 해라, 투자를 저렇게 하지 말라’ 하지 않는 정부로 변할 것이다. 그런 ‘편한 지도자’ 밑에서 위세하지 않는 공무원, 부담스럽지 않은 세금, 방만치 않은 정부 지출, 절제된 규제가 받쳐 주는 ‘작은 정부’ ‘친(親)국민 친(親)시장 정부’가 움틀 수 있는 것이다.

제발 세금 덜 내고 정부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한번 살아 보자. 위대한 지도자나 일 많이 하는 정부는 원하지도 들이지도 말자.

김정수 경제연구소 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