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줍던 교통사고현장 유일한 義人 포장마차주인 박조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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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우리사회의「양심마비」를 드러내보인 서울영등포구문래동 야채상 뺑소니사망사고(中央日報 9월28일字 23面보도)에서 한 가난한시민의「시민정신」이 훈훈한 뒷얘기가 되고 있다.
다른 모든 행인들이 길바닥에 날리는 돈을 줍느라 정신을 잃고이리저리 뛰는 상황에서 단 한사람,그만이 사고로 쓰러진 여인을돌아본 것이다.
『왜 전들 돈욕심이 없겠습니까.그러나 바로 옆에 뺑소니 사고를 당해 사람이 죽어있는데 어떻게 돈에 정신이 팔릴수 있겠습니까.』 서울영등포구문래동1가 영일시장 입구에서 포장마차를 하는박소길(朴昭吉.39)씨가 27일 오전 뺑소니차에 치여 숨진 야채상 박미영(朴美英.32.여)씨의 사고를 안 것은 사고가 난 3분후쯤.
횡단보도옆 포장마차에서 새벽상인들을 상대로 국수를 말아 팔던朴씨는 오전4시10분쯤 길쪽에서『퍽』하는 둔탁한 소리를 들었으나 무심코 지내다 조금 뒤『한 여자가 차에 치였다』는 말을 듣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어둠속 6차선 도로 한쪽에는 야채상 朴씨가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져 있고 지나던 택시기사들과 행인등 20여명이 몰려 朴씨의돈가방에서 빠져나와 길가에 흩어진 지폐를 줍느라 부산했다.
『돈을 줍느라 혈안이 된 사람들의 팔소매를 붙잡고「뺑소니차량을 쫓아달라」「우선 사람이라도 병원으로 옮겨달라」고 애원했지만어느 한사람 들은체도 안한채 길가에 흩날리는 지폐만 쫓아 이러저리 뛰어다니더군요.』 일단 정신을 가다듬은 朴씨는 이런 행인들을 뒤로한채 공중전화부스로 달려가 우선 문래파출소에 사고신고를 했다.
朴씨가 사고현장으로 다시 돌아와보니 행인중 대부분은 이미 돈을 챙겨 사라진 뒤였다.
『바로옆에 뺑소니 사고를 당해 사람이 죽어있는데도 돈에만 정신이 팔려버린 사람들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3년전부터 이곳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있는 朴씨부부의 하루벌이는 10만원 안짝.전남신안이 고향으로 국민학교도졸업못한 朴씨는 70년 상경,공사장 인부와 식당종업원으로 일하다 89년 공사장에서 오른쪽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하자 부 인과 함께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매일 자정때부터 아침까지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국수등 밤참을팔고있다.朴씨는『어려서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렸고 아버지마저 15년전에 돌아가셔 줄곧 외톨이로 자라왔다』며『최근의 몇몇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흉악범들이 범행동기를 어려운 가정환경 탓으로돌리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야채상을 두번씩이나 죽인 실종된 시민의식이 못내 가슴아프다며『뺑소니 운전자라도 하루속히 경찰에 자수했으면 좋겠다』고말한다. 〈金鴻均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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