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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인터넷 소설…문학의 위기?

중앙일보

입력

새롭게 몸바꾸기 하는 문학
작가·독자의 경계 무너져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종이 위로 옮겨간 ‘이야기’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다시 전자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사이버상의 게시판에는 수많은 글과 댓글이 올려지고, 누리꾼들의 호응을 얻은 인터넷 소설은 오프라인의 도서 시장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로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문학은 더 이상 경건하게 받아들이는 완성된 작품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문학이 위기를 맞은 걸까? 경희대 최혜실 교수(국어국문학)는 매체의 진화 속에서 문학이 새롭게 몸 바꾸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는 디지털 시대에 문자 문학이 어떻게 변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분석한 연구서다. 매체의 진화와 문학의 변모라는 다소 딱딱한 인문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우리 주변의 흥미로운 내용으로 친근하게 다가선다.
저자는 우선 문학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디지털 언어와 소통 구조에 주목한다. 말과 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일방향적인 글과 달리 친교적인 표현이 중요시되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특한 언어문화가 형성되고 있음을 짚어준다. 디시인사이드(디지털 카메라, 노트북을 소개하고 누리꾼들이 사용기와 사진을 올리는 사이트)와 엽기문화, 댓글 등에서 말이 스스로 증식하는 현상도 찾아낸다.

디지털 시대에 문학이 보여주는 변화의 양상에 관련해선 이문구·김종광·박민규·김연수 등 젊은 작가들의 글이 인터넷 글쓰기와 닮았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인터넷 글쓰기 형식이 문학에 본격적으로 스며들었음을 보여주는 예라는 것이다. 다시쓰기로서의 문학의 경향을 드러내는 댓글과 팬픽(Fan Fic)도 살펴본다. 하루에 1000만개가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사이버상의 댓글은 하나의 사안을 완성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즉 그 글의 완성에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팬 픽션(Fan Fiction)의 줄임말인 팬픽은 만화·소설·영화 등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작품을 대상으로 팬들이 자신의 뜻대로 비틀거나 재창작한 작품을 일컫는다. HOT·god·신화·동방신기·SS501 등을 대상으로 하는 스타 팬틱은 팬들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며 독자(누리꾼)들의 글쓰기를 독려한다.
인터넷의 쌍방향성과 집합기능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작품이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 거리를 두고 감상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져가고 있다”며 “이들에게 작품은 만든 사람과 수용하는 사람이 벌이는 한바탕 과정에서 탄생하는 무엇”이라고 설명한다.

“문학은 이제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텍스트를 중심으로 나누는 현재진행형 스토리텔링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글 파괴라는 비판을 받는 귀여니(본명 이윤세)의 인터넷 소설에 대해선 “그녀가 인쇄문학이 아니라 디지털 매체에 가장 잘 맞는 문학적 형태를 동시대 인터넷 작가들 중에서 적극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받는 오해”라고 감싼다. “문학은 구술성(스토리텔링)에 바탕을 둔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 예술”이며 “이런 면에서 인터넷 소설 등은 인쇄 문학에 비해 구술성에 더 가까이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컴퓨터 게임, 사용자제작동영상(UCC),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등도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형식은 다르지만 이들도 매체의 진화 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태어난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이다. 문학이 전자문학에 머물지 않고 전자문화로 확대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은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 “매체의 진화양상은 무엇보다 상호작용성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있으며 조만간 컴퓨터와 로봇이 인간과 현실공간에서 상호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저자는 『모든 견고한 것들은 하이퍼텍스트 속으로 사라진다』『디지털 시대의 문화 읽기』『디지털 시대의 영상문화』『문화콘텐츠』『스토리텔링을 만나다』등의 저서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문학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리미엄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자료제공=한길사 / 031-955-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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