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익 KMW 부사장이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본사에서 생산을 마친 이동통신 기지국용 부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설립 16년째인 이 회사는 3, 4세대 무선통신 핵심 부품을 자체 개발했다. 유대익(50) 부사장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미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16군데에 납품한다”고 말했다. 스프린트를 비롯해 세계 최대 통신 장비 업체인 알카텔-루슨트가 포함돼 있다. 국내에선 삼성전자와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F·LG텔레콤) 등이 주요 고객이다. 국내외 무선통신 업계에서 한창 진행되는 3, 4세대 서비스가 KMW의 성장에 날개를 달아준 덕분에 올해 매출은 27% 뛴 1200여억원을 기대한다.
김덕용(51) 사장이 다니던 전자회사를 그만두고 세운 KMW는 국내 무선통신 부품 업계의 선두 주자로 순풍에 돛을 단 듯 보이지만 그동안 숱한 고비를 넘겼다.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그는 대영전자와 대우통신·삼성휴렛팩커드 등에서 무선통신 분야의 기술개발과 영업을 담당했다. 무선통신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뛰쳐나와 1991년 서울 신림동에 회사를 차렸다. 주변에선 모두 말렸다. ‘삐삐’라고 불린 무선호출기도 낯선 시절에 무선통신은 선진국에서나 하는 것쯤으로 다들 생각했다. 실제로 2년 반 동안 거의 돈벌이를 하지 못했다. 사무실도 임대료가 싼 경기도 용인 모현면의 한 축사로 옮겼다. 부품 개발에 쓸 알루미늄을 살 때도 ‘덤이라도 좀 더 안 주나’ 하고 바랄 정도로 쪼들렸다.
93년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기지국 송신기에 들어가는 스위치를 주문하면서 서광이 비쳤다. 값이 수입품의 절반(100만원)인 데다 부품 내부 구조를 단순화한 점을 인정받았다. 주문량이 늘면서 고사 직전이던 회사가 살아났다. 스위치뿐만 아니라 주파수를 걸러주는 필터 개발에도 뛰어들어 제품을 다양화하자 매출이 급격히 늘었다. 90년대 중반 시작된 PCS의 사업자들이 기지국 등 설비 투자에 적극 나서면서 호황을 누렸다. 96, 97년 연속 벤처기업 대상도 받았다. 김 사장은 “미래가 온통 장밋빛으로 보였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닥치기 한 달 전인 97년 10월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지금의 자리에 공장을 신축하려고 첫 삽을 떴다. 시설투자비 대부분은 은행 돈이었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고객인 통신회사들은 시설 투자를 중단했다. 빚 독촉이 심해지고 매출마저 곤두박질치면서 회사 존립이 위태로워졌다. 상당 기간 국내 시장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해외를 뚫어야 했다.
그러던 중 2001년 일본 NTT도코모와 계약한 것이 도약의 기폭제가 됐다. 일본 3세대 서비스용 기지국에 들어가는 부품인 옥외형 여파증폭장치(TTA)를 수출하게 된 것이다. 유 부사장은 “섬나라라 염분에 잘 부식되지 않고 지진과 열에 잘 견디는 제품을 요구하는 등 납품조건이 까다로웠다”며 “그 덕분에 제품의 경쟁력을 더욱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제품은 업계에서 입소문을 타며 효자상품이 됐다.
무선통신 시장의 진화를 이끄는 KMW는 요즘도 한눈 팔 시간이 없다. 여기저기서 경쟁업체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에 쏟아 넣는 건 이 때문이다. 2005년 기술개발·해외시장 개척 비용이 많이 들어 적자를 냈을 때도 연구비는 줄이지 않았다. 370여 명의 직원 중 25% 이상(100여 명)이 연구 인력이다. 24시간 전등을 끄지 않는 연구소가 이 회사의 힘이다. 유 부사장은 “통신 장비 업체는 사회적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며 “열사·혹한 어느 곳에서든 견딜 만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글=하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