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누드보이’ 찍는 에로감독의 순정-색화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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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14면

공자관은 에로 영화를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깃발을 꽂으며’ ‘하지마’ 등을 만들며 한국 에로 비디오의 마지막 시절을 함께했던 그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 첫 번째 극장용 장편영화를 만들었다. ‘색화동’은 언뜻 에로영화로 보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한 청년의 성장영화이고 은밀한 세계를 경쾌하게 찍은 코미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과를 졸업한 진규(조재완)는 시나리오 공모전에 낙방만 하다가 먹고살기 위해 에로영화사 ‘온니포맨’ 감독 자리에 지원한다. 주먹구구식으로 채용된 그가 처음 맡은 일은 ‘올누드보이’ 조감독. 그러나 하루에 30신을 찍는 에로영화 제작현장은 낯설고 혼란스럽기만 하다. 감독(김동수)은 일정에 쫓기면 무조건 드라마 부분을 삭제해 버리고, 여배우 사빈(정소진)은 전날 밤 술을 마셨는지 촬영현장에 나타나지도 않고, 진규가 장소를 섭외할 때마다 모욕과 구박이 날아온다.

‘색화동’은 모든 것이 부족한 데다 세간의 멸시도 만만치 않은 에로 영화계를 유머러스하게 그리는 편이다. “혀를 한번 잘못 놀렸다가” 15년 동안 감금되어 TV를 보며 자위만 거듭한 여자 오대순이 주인공인 ‘올누드보이’ 스토리는 따로 비디오로 제작해도 될 정도로 코믹하다.

‘스타워즈’와 ‘영웅본색’을 패러디한 상상 속의 에로영화 장면도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색화동’은 드라마보다 베드신을 먼저 찍을 수밖에 없는 에로영화 제작진의 고충을 비웃지 않고, 에로영화를 돌려보며 고민을 거듭하는 진규의 꿈을 위로한다. 아마도 감독 자신이 다만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13회 촬영이라는 제한과 첫 번째 극장용 영화라는 부담 때문에 감독 스스로 에피소드 몇 가지를 삭제한 것이다. 그 때문에 상영시간은 71분으로 다소 짧고, 결말도 느닷없이 다가온다. 그럼에도 의문과 방황을 거쳐, 여전히 ‘올누드보이’ 조감독으로 씩씩하게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치는 진규의 모습은, 에너지와 쓸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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