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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성배’ 이번에도 해외파에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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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16면

힘 잃은 ‘박성화 연계론’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 인선 작업 한창

방향선회의 중심엔 박성화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있다. 기술위는 지난 8월 K리그에서 박 감독을 빼와 올림픽호 선장에 앉혔다. 당시 기술위는 “국가대표팀은 연말까지 일정이 없으므로 차분하게 감독을 고르겠다”고 설명했다.하지만 10월 중순 이 위원장은 슬며시 “올림픽팀을 잘 이끌고 있는 박 감독도 대표팀 감독 후보”라고 말을 흘렸다. 박 감독을 염두에 두고 차기 감독 후보를 고르지 않았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올림픽팀이 10월 17일 시리아와 비겨 본선행을 확정짓지 못하자 ‘박 감독 연계론’에 금이 갔다. 기술위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기술위는 1차적으로 2004년 본프레레 감독 영입 당시 후보에 오른 인물을 검토했다. 브라질과 포르투갈을 맡은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아일랜드 감독을 지낸 마이클 매카시 등이 후한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리버풀과 리옹을 지휘한 제라드 울리에, 유벤투스가 2부리그로 강등됐을 때 팀을 이끈 디디에 데샹이 가세했다. 바레인의 ‘한국 킬러’ 밀란 마찰라도 후보에 포함됐다.

여론 달래기에 해외파가 적격

히딩크 감독 이후 태극호는 코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베어벡이 맡았다. 모두 유럽파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선임 당시에는 많은 기대를 모은 감독들이다. 그들의 명성은 대단했다.

코엘류는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을 4강에 올렸다. 본프레레는 96년 올림픽에서 나이지리아를 우승시켰다. 아드보카트는 네덜란드 감독을 두 번이나 지냈다. 이들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한국 축구에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잠재웠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패막이였다.

이 같은 현상은 프로축구판을 보면 수긍이 간다. 올 시즌 K리그는 심판 판정과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 심판에 대한 불신이 커서다. 하지만 6강 플레이오프부터 분데스리가 심판을 긴급 수혈하자 심판에 항의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사라졌고, 경기 진행속도 역시 훨씬 빨라졌다.

현실적 이유는 ‘월드컵’

해외파 감독은 세계 축구 흐름에 대한 이해도에서 국내파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학연·지연에 얽매이지 않고 실력과 잠재력을 갖춘 선수들을 발탁한다는 장점도 있다. 여기에 전술구사 능력과 임기응변 능력, 그리고 선진적인 훈련시스템 등도 한몫한다. 하지만 가장 실질적인 이유는 ‘월드컵’이다. 월드컵 본선 32강 조 편성에서 유럽 2개 팀과 한 조에 포함되는 현실이 크게 작용한다. 히딩크 감독 이후 유럽파가 득세한 까닭이다. 또한 팀 전술을 강조하는 유럽 스타일이 한국 축구와 맞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요인이다.

히딩크 감독 시절 기술위원장을 맡았던 이용수 KBS 해설위원은 “당시 월드컵 본선을 위해 전술변화 능력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외국인 감독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미보다는 유럽, 동구권보다는 서구권에다 월드컵 무대 경험이 있는 감독으로 기준을 좁혀갔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국내파’ 불씨는 꺼졌나?

해외파 감독을 우선시하는 상황을 국내 지도자들은 강한 톤으로 비판한다. 국제경기 경력이 중요하다는 기술위의 입장에 성남 김학범 감독은 “대표팀을 맡아봐야 유럽이나 남미 팀과 경기를 할 것 아니냐. 국내파는 영원히 대표 감독을 하지 말란 것이냐”고 비난했다. 영국 유학 중인 인천 장외룡 감독은 “히딩크 이후 외국인 감독은 모두 실패했다. 세계축구 흐름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하는 국내 지도자들의 열의가 대단하다. 이제는 국내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히딩크 감독에 비해 소집훈련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외국인 감독을 데려와도 뚜렷한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주장도 비등한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국내파 발탁의 가능성이라는 ‘불씨’가 남아 있다. 만일 박성화 감독이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할 경우 다시 한 번 연계론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남아 있다.

하지만 해외파냐 국내파냐를 논하기 전에 정확한 선발기준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술위는 여론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이름값에 얽매이지 말고 과거의 실패사례를 꼼꼼히 분석한 뒤 감독 후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외 감독을 떠나 한국 축구를 위해 잘할 수 있는 감독, 잘해온 감독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독이 든 성배’라는 태극호 선장의 자리를 ‘영광이 가득한 성배’로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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