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골퍼가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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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최경주.

 “신경 끈다.”-김미현.

 주말 골퍼들은 자신보다 훨씬 실력이 좋은 사람과 라운드할 때 형편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드라이버로 어마어마한 장타를 치는 동반자와 경기하면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OB(아웃오브바운즈)가 많이 나오고, 정교한 아이언샷을 구사하는 동반자와 경기할 때는 특히 파 3홀에서 성적이 나쁘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해지는 것이 골프이기 때문이다.

 프로선수들도 다르지 않다. 세계 랭킹 톱 10에 든 최경주(나이키골프)도 부담이 많이 되는 상대가 있다. 바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다. 최경주는 “우즈와 한 조로 편성되면 우즈의 샷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경기 끝날 때까지는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말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주 싱가포르오픈 최종 라운드 챔피언조에서 US오픈 우승자 앙헬 카브레라(아르헨티나)와 경기한 재미동포 박진도 그랬다. 박진은 “드라이버 거리 차이가 50야드 이상 났다. 그래서 카브레라가 티샷할 때는 일부러 다른 곳을 봤다”고 말했다. “폭발적으로 휘두르는 카브레라의 스윙을 보면 나의 리듬도 잃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비거리가 짧은 김미현(KTF)도 같은 이유로 “아예 신경을 안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김미현은 “티샷 거리가 짧기 때문에 대부분 내가 먼저 세컨드샷을 하는데 핀에 잘 붙이면 오히려 티샷을 멀리 친 선수가 몰리게 된다”고 말했다.

 LPGA투어에서 뛰고 있는 김인경은 “실력 좋은 선수와 함께 치면 시간이 늘어지지 않아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고 말했다. 안니카 소렌스탐을 가르친 피아 닐슨은 “골프는 자신의 생각만 하고 자신의 스윙 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마음이 불안한 것은 모든 골퍼가 마찬가지다. 약자가 무너지지 않고 버티면 약자에게 밀리는 것을 걱정하는 강자들이 훨씬 더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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