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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꿈 후배들이 이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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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나의 아들이 생전에 못 이룬 음악에의 꿈과 열정을 후배 음악도들이 대신 실현할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1987년 학교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아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이대웅 음악장학회’를 세운 이대봉(66·사진)씨는 20년 전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예고 교정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 고 이대웅(당시 17세)군이 그의 막내 아들이다. 이씨는 항공물류·가스 배관시공업을 하는 참빛그룹의 회장이다.

“선영에 아들을 묻고 돌아오는 길에 서울대 김성길 교수의 권유로 콩쿠르를 만들었습니다. 25회를 맞는 2012년부터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성악콩쿠르로 만들 생각입니다.”

대웅군은 1987년 서울 류관순기념관에서 열린 서울예고 정기연주회 독창자였다. 연주가 끝나고 꽃다발을 37개나 받을 정도로 훌륭한 공연이었다고 한다. 동료들의 축하와 시샘을 함께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연주회가 끝나고 7일째 되던 날 점심시간에 교실에 있던 그는 3학년 선배들에게 불려 나가 복부 급소를 얻어맞고 응급조치도 제대로 못받은 채 목숨을 잃었다.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기 전에는 아들의 연주에 가지 않겠다고 아들과 약속했었어요. 그 약속 때문에 공연을 못 본 것이 너무 아쉬워요. 하나님이 곁에 두고 노래를 듣고 싶어 일찍 불러가신 거라 생각은 해보지만 너무 안타깝습니다.”

사고 당시 미국 출장 중이었던 이씨는 서둘러 귀국해 아들의 장례를 치렀단다. 장례식을 마친 뒤 수감 중이던 가해 학생의 선처를 부탁하는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해 풀려나게했다. 그리고 아들의 모교 교장 선생님이 들고 온 교감과 담임교사의 사표도 되돌려줬다. 이같은 사연은 88년 1월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의 신년 메시지를 통해 공개돼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대웅 콩쿠르’로도 유명한 ‘한국성악콩쿠르’는 매년 이군의 기일(忌日)인 11월 26일 서울예고 강당에서 열린다. 5000만원의 기금으로 설립한 장학회의 기금은 12억원으로 늘어났다. 대상 입상자에겐 1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국내 콩쿠르 가운데 최고 액수다.

올해는 20회를 맞아 26일 저녁 서울예고 강당에서 역대 입상자들이 기념 음악회를 공연한다. 독일 울름 극장 주역가수로 활동 중인 테너 김재석(97년 대학부 1위), 지휘자 르네 야콥스와 함께 유럽 바로크 오페라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소프라노 임선혜(97년 대학부 대상),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 교수로 있는 소프라노 김수연(98년 대학부 1위) 등이 출연한다.

이 콩쿠르에서 입상한 많은 젊은이들이 유럽 굴지의 오페라 극장에서 주역 가수로 활동 중이다. 테너 정호윤(빈 슈타츠오퍼), 테너 김석철(도르트문트 극장), 테너 하만택(크레펠트 극장), 테너 김동원(프라이부르크 극장) 등이 그들이다. 소프라노 황후령, 바리톤 노대산은 2005년 소프라노 홍혜경이 미미 역으로 출연한 예술의전당 주최 ‘라보엠’에서 각각 무제타와 마르첼로 역을 맡아 열연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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