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총선현장] 4. 광주 민심은 어디로 (上)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15 총선을 두달여 앞두고 호남 민심의 향방을 좌우할 광주를 지난 3일과 4일 둘러보았다. 생각 이상으로 시민들은 정치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싫어했다. 민주당이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여는 등 정치권의 총선전은 이미 시작됐지만 일반 시민들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무심해 보였다. '배신론'과 '개혁론'을 내세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공방 속에 오히려 입도 마음도 꼭꼭 닫아버린 눈치다. 과연 총선 열기는 얼어붙은 광주시민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인가. 선택의 순간, 광주 민심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광주 취재기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주]

'포카페이스'냐 진짜 무관심이냐: 광주 민심에 애타는 정치권

입춘 전날이었던 지난 3일 오후 광주. 그리 넓지 않은 구동체육관 앞 광장은 아침에 눈보라까지 한차례 몰아친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죽이기와 불법 관권선거 규탄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몰려든 민주당원과 지지자 3천여명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좌석이 3천석 정도라는 체육관은 이미 입추의 여지 없이 꽉 들어찼기 때문이다. 이들은 곳곳의 노점상에서 파는 뜨거운 차로 추위를 녹이며 조순형 대표 등 서울서 내려온 민주당 지도부의 연설을 듣기 위해 옥외 스피커에 귀 기울였다. 민주당의 광주시지부 관계자는 "단시간에 준비한 행사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호응이 예상보다 훨씬 뜨겁다"면서 "지난 대선 때 노무현에게 90% 이상의 지지율을 보여준 '원죄'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광주 시민들이 이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심판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고무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일반 광주 시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싸늘했다. 구동체육관 관리 직원인 이준엽(38)씨는 "오늘 여기나 이렇지, 총선 분위기 같은 건 전혀 느낄 수 없다"면서 "돈 먹은 건 마찬가진데 서로 니가 더 먹었다며 욕하고 싸우니 정치 얘기가 어디 하고 싶겠냐"고 반문했다. 체육관 앞을 지나던 한 택시 운전사도 "참가자들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들이 쭉 늘어서 있어 교통이 엉망"이라는 불평만 늘어놓았다. 대부분의 조간신문과 방송이 이날 집회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4일 오전에도 기자가 만난 택시 운전사들은 비슷한 반응이었다. "신문을 보니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하드만요. 그려도 손님들이나 집안 식구들은 아무 소리 없응께…."

총선이 두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광주 시민들은 이렇게 무심해 보였다. 애타는 것은 정치권이다. 민주당이 3일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광주에서 대규모 반정부 집회를 개최한 것도 사실 바람몰이의 의미가 컸다. 광주에서만큼은 열린우리당에 밀릴 수 없다는 절박감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그러나 열린우리당도 기 싸움에 지지 않을 태세다. 광주에서 민주당에 승리한다면 민주당이 그토록 부르짖는 '배신론'을 잠재우고 신당 창당의 정당성까지 인정받는 셈이라고 보는 것이다. 정동영 의장이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을 겨냥, "광주, 그것도 민주당 강운태 사무총장의 지역구인 남구에 출마해 반개혁세력의 실체가 뭔지 선명하게 광주 시민들에게 보여 선택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현재 광주는 6개의 선거구로 나뉘어 있다. 지난 16대 선거 때는 남구를 제외하곤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무소속으로 당선됐던 남구의 강운태 의원도 이후 민주당에 입당, 지금은 실세인 사무총장 직까지 맡고 있다. 대신 서구와 북구 을의 정동채.김태홍 의원이 열린우리당으로 소속을 바꾸면서 민주당 대 열린우리당은 4대2의 구조다. 한나라당은 여전히 발붙일 틈이 없어 보였다. 2002년 자치단체장 선거 때는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보다 높은 득표율을 보여 비례대표 시의원을 배출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 대결은 무의미한 셈이다. 그만큼 인신공격 등으로 선거전이 과열될 가능성도 높다.

당의 '간판'을 내세워라: 남구.북구 갑

"왕수석 노릇 하니 계속하고 싶은 모양이지. 한 사람은 왕수석의 대서방(代書房)이나 하고 있고."

노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로 꼽히는 염동연(58) 전 정무특보는 7일 기자간담회를 자청, 총선 출마를 고사하고 있는 청와대의 문재인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을 각각 '왕수석'과 실세를 따라다니는 '대서방'에 비유하며 몰아붙였다. 더 이상 고고한 척 하지 말고 이 정부에 대한 광주민심을 형편없이 만든 책임자로서 문 수석과 정 수석이 부산과 광주에 출마해야 한다는 것이다.

염 전 특보는 물론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정 수석의 출마를 절실히 바라고 있는 지역은 광주 남구다. 민주당 사무총장인 강운태 의원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유일한 당의 간판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광주시장 출신의 강 의원은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데다, 지난 총선 당시 무소속으로 나서서 '깃발만 꽂아도 당선'이라던 민주당 의원을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던 인물이다. 민주당에서는 이번에 강 의원에 맞서 공천을 신청한 사람조차 없었다.

정 수석은 광주YMCA 사무총장 출신으로, 이 지역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선 신망을 받았었다. 따라서 정 수석이 출마한다면 최악의 경우 선거에선 승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열린우리당 '개혁' 열풍의 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염 전 특보의 독설에도 불구하고 정 수석은 불출마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열린우리당의 이 지역 공천 신청자로는 김주삼 동북아평화포럼 대표, 김화진 광주광역시 사이버의회 의장, 박찬주 변호사가 있다. 박규환 열린우리당 시지부 사무처장은 "정 수석이 출마 의지를 밝히더라도 경선은 치루도록 하는 게 당의 기본 방침"이라고 말했다.

6선인 김상현 의원이 지키고 있는 북구 갑 지역도 비슷한 상징성을 띠는 곳이다. 4일 본지에 보도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내일 투표할 경우' 광주 지역에서 민주당이 '확실 우세'를 보인 선거구 2곳도 남구와 북구 갑이다. 민주당의 김재두.윤창환 두 부대변인과 조영무 광양보건대 교수가 공천을 신청해 놓고 있지만 인지도 면에서 워낙 앞서는 김 의원을 제끼긴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칠순을 앞둔 김 의원에 대해 불출마를 촉구하는 '고양이 방울'을 걸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열린우리당도 김 의원과 겨룰 만한 대항마를 찾지 못해 고심을 하고 있다. 현재 강기정 희망자활후견기관 관장과 조형근 호남대 교수, 김창호 개혁당 운영위원이 공천을 신청한 상태다.

이 지역의 변수는 염 전 정무특보의 출마 가능성이다. 노 대통령 당선 직후 나라종금 로비사건으로 구속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지난 달 30일 결심공판에서 검찰로부터 징역 4년을 구형받고 오는 13일 선고를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그는 2일 중앙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자신의 억울함과 총선 출마 의지를 강력히 밝히면서 "서구가 분구가 되지 않을 경우 연고지가 있는 북구에 출마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해 노 대통령의 민주당 내 경선 때부터 염 전 특보의 지휘 아래 움직였던 조직이 현재 산악회 등을 통해 계속 명맥을 잇고 있기 때문에, 그가 출마할 경우 다시 한번 예상 밖의 폭발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광주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 정부가 들어선 후 노 대통령의 측근 중 비리 혐의로 구속된 첫 타자 아니냐"면서 "출마한다 해도 낙천.낙선운동 대상자로 찍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