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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업>연극 "아,이상" 이상役 김갑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연기는 일종의 오르가즘 입니다.』 연극배우 김갑수(37)는 「신명난 무당이 다른 혼백에 씌여 망아지경(忘我之境)에 드는 것처럼 완전히 극속에 녹아드는 상태」를 연기라고 정의한다.그는 연기생활 17년동안 겨우 서너차례 맛본 그 황홀한 체험이 자신을 평생 무대위에 살 게하는 올가미가 됐다며 푸념반 자랑반 너스레를 떤다.
그는 요즘 바쁜게 불만인 배우가 됐다.오는 29일 공연되는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 『아,이상(李箱)』의 이상역에 캐스팅됐지만 연습에만 매달리고 싶은 그의 마음과는 달리 자꾸 다른 일로시간을 뺏기기 때문이다.주범은 최근 개봉된 첫 영화출연작 『태백산맥』.이 영화가 폭발적 인기를 누리면서 그는 일약 스크린스타로 떠오르게 됐고 덕택에 팬사인회다 인터뷰다 갑자기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아졌다.
『집중하는 성격이에요.두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는 체질이라 연습시간을 뺏기면 왠지 불안합니다.』 배역이 맡겨지면 그것에만 매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연습벌레로 소문난 그는 그래서 유명세를치른다는게 부담스럽다.
그의 연기인생은 묘하게도 역사적 인물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있다.84년 『님의 침묵』에서 만해 한용운으로 시작한 실존인물과의 관계는 그에게 서울연극제 연기상을 수상케한 91년 『길떠나는 가족』의 화가 이중섭으로 변신을 거쳐 이번엔 요절한 천재시인 이상으로 이어졌다.실존인물역은 가공인물에 비해 보다 많은 연구와 생각을 요구한다.
『만해를 벗고 이중섭이 되기까지 8년이 걸렸습니다.이중섭을 벗고 이상이 되는 게 지금 제겐 가장 큰 숙제입니다.』 ***실존인물 재창조 어려워 그가 되고자하는 이상은 물론 실존인물 그대로의 이상은 아니다.짧은 무대공연에서 이상의 삶을 재연하기는 애초에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우선 이상의 삶을 이해하고 이상이 되고난뒤 무대인물로 재창조된 김갑수의 이상.그가 붙잡으려는 이상은 그런 이상이다.
무대에만 서면 특유의 신명으로 객석을 몰아치는 연기와 살아숨쉬는 대사를 만들어내는 타고난 무대감각으로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배우 김갑수.그의 이상을 만나는 일은 또 하나의 설렘이다. 글:李正宰기자 사진:張忠鍾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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