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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 HOLIC] 사각사각 ~ 가을과 수다떠는 발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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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계절은 으레 덜 주목 받기 마련이다. 몸도 마음도 다가오는 계절을 향해 열리는 게 이치다. 그러나 가을만큼은 그 끝자락까지도 특별하다. 단풍의 화려함이 절정을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수목원을 찾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낙엽이 쌓인 산책로를 걷다 보면 어느새 길의 일부가 되는 듯하다. 그래서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되고 미세한 움직임에도 눈을 떼지 못한다. 사그락거리는 낙엽과 스치는 바람에도 속수무책으로 팔랑이는 작은 나뭇잎은 가을 산책길의 정다운 친구다.

경기도 포천의 국립수목원은 규모로나 보존 상태로나 일반 관람객과 전문가 공히 최고로 꼽는다. 관람인원을 제한하고 있어 봄, 가을에는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가을 단풍이 어느 정도 내려앉은 지금은 사람들의 북적거림을 피해 조용히 산책을 즐기기에 좋다.

수목원 내 국토녹화기념탑에서 시작해 육림호수까지 이어지는 길이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다. 빨간 당단풍과 그 맞은편의 곧고 푸른 전나무가 보색 대비를 이루는 입구 풍경이 인상적이다. 또 나무 사이로 가느다랗게 쏟아지는 햇살과 보일 듯 말 듯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수목원 산책의 색다른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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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한 걸음으로 15분쯤 걷다 보면 ‘생태숲 관찰로’가 나타난다. 관람객을 안내하는 숲 해설가들은 관찰로에서는 가능한 한 목소리를 낮추길 권한다. 도시에는 없는 자연의 소리를 듣는 것 역시 수목원 산책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관찰로를 빠져나오면 만나게 되는 육림호. 수면에서 반짝이는 가을 햇살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낙엽이 수북한 주변의 풍경도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이곳을 추천한 수목원 코디네이터 김영재씨도 늦가을 수목원 산책의 백미로 낙엽을 꼽는다. 사락사락 밟히는 소리와 콩을 볶듯 구수한 냄새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금빛 낙엽은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못할 일도 없다. 바로 산책하는 사람, 낙엽을 밟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나무와 하늘의 어울림을 만끽하는 사람들이 곧 낙엽의 주인이다. 여기 이 가을 낙엽을 가질 수 최고의 산책로를 소개한다. 각 수목원 코디네이터들이 추천해 줬다.

글=객원기자 조은영·최경애 dorazzang@joongang.com 사진=프리랜서 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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