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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비준 기다리는 칠레 르포] 2. 5억 인구 南美시장 칠레 통해야 뚫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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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기에 있는 휴대전화는 모두 수입품이죠. 1위인 노키아를 비롯해 소니에릭슨.모토로라.삼성.LG.지멘스 등 없는 게 없습니다."

칠레 산티아고 시내 메리오트 호텔 옆 대형 쇼핑몰에서 세평 남짓한 휴대전화 가게를 운영하는 리카르도 파르네욜은 자신의 조그만 가게를 두고 '세계 휴대전화 업체의 각축장'이라고 말한다.

그는 "여기서 팔리는 걸 보면 앞으로 남미 시장에서 어느 회사 제품이 잘 팔릴지 훤히 알 수 있다"고 자랑한다. "휴대전화를 전혀 생산하지 않고 시장이 완전히 개방된 칠레야말로 세계 각국에서 들어온 수입품들이 품질과 가격만으로 승부를 겨루는 완벽한 경쟁시장"이라는 설명이다.

상가 건물 곳곳에는 각사의 휴대전화 이벤트 광고가 즐비하다. 인구 1천5백만명인 칠레에서 지난해 팔린 휴대전화는 2백60만대. 칠레는 그 자체만으로도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그러나 세계 전자회사들이 다투어 칠레 시장에 공을 들이는 것은 칠레가 5억 인구의 남미 시장을 뚫기 위한 첫 관문이기 때문이다.

칠레 경제부의 아나 마리아 바리나(45)대외경제국장은 "칠레는 남미의'테스트 시장'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각국의 다양한 제품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서 남미시장의 취향과 가격대를 시험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산티아고에서 살아남는 제품은 훨씬 큰 시장인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로 가도 승산이 큽니다." 자기 나라 시장을 지키기에 급급한 다른 나라 관리와 달리 바리나 국장은 다른 남미 국가에 진출하기 위해서라도 어서 칠레시장에 들어오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개방 경제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이다.

그런 그에게 눈앞의 시장을 뻔히 놔두고 FTA 비준을 미루는 한국이 잘 이해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칠레는 개방정책을 편 지 25년쯤 됐어요. 이제 칠레 사람들은 자유무역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외국의 좋은 제품을 싼값에 쓸 수 있고, 그 대신 칠레의 농산물과 광산물을 많이 내다 팔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지요. 한국이 FTA 비준을 놓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산티아고 국제공항을 나서면 뙤약볕 아래 온갖 종류의 택시가 줄지어 서 있다. 한국의 현대.대우.기아.쌍용을 비롯해 유럽의 시트로앵.푸조.피아트.폴크스바겐, 일본의 도요타.스즈키.닛산.미쓰비시, 미국의 시보레.포드 등 전 세계 소형차 경연장 같다.

자동차도 칠레시장에서 팔려야 남미 시장을 넘볼 수 있다는 얘기가 빈말이 아니었다.

구자경 KOTRA 산티아고 무역관장은 "FTA는 한국의 산업 공동화(空洞化)를 막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FTA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 그만큼 공장 가동을 늘려 기업의 해외 이전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신장범 주칠레 대사는 "FTA가 체결되면 그 성과를 최대한 거두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하는 전략은 수출로 시장을 개척한 뒤 직접 투자를 확대하는 단계적 접근법이다. "FTA로 즉각 무관세 혜택을 보는 품목(66%)의 수출을 늘린 다음, 직접 투자를 통해 칠레가 FTA를 맺고 있는 36개국에 무관세로 물건을 파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산티아고=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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