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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엔드밀 세계 1위 넘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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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절삭 공구를 만드는 YG-1의 송호근 사장이 인천 청천동 본사 전시실에서 쇠를 깎는 엔드밀과 나사를 가공하는 TAP 제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특수 열처리된 단단한 쇠를 깎는 절삭공구인 엔드밀은 비행기 동체나 자동차 차체·휴대전화 등 정교한 제품과 금형을 만들 때 쓰인다. 단단한 쇠를 회전하면서 깎아야 하는 만큼 1000분의 1㎜의 오차가 큰 차이를 만든다. 때문에 고도의 정밀성을 요한다. 비싼 데다 일회용이라 수익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미쓰비시·스미토모·히타치 같은 일본의 세계적 대기업들도 잘 놓지 않으려 하는 핵심 사업인 연유다. 이처럼 치열한 엔드밀 시장에서 세계 5대 메이커로 꼽히는 곳이 바로 YG-1이다.

송호근(56·사진) 대표가 1981년 세운 YG-1은 일본 기업이 장악한 엔드밀을 국내 처음 국산화했다. 77년 절삭 공구를 생산하는 태화기계에 입사해 수출 업무를 하면서 엔드밀의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원자재의 원가가 낮은데다 엔드밀을 소비하는 시장 자체가 선진국이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높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국내시장 공략 후 해외로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초창기부터 해외시장에 주력했다. 창사 이듬해인 82년 가을, 그는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계를 도입하던 미국 거래처에서 산 현지 5000여 군데 공구상의 목록과 제품 샘플을 들고서다. 43일간 23개 도시를 오가는 강행군을 하면서 ‘공구’라는 간판만 보이면 들어가 판촉을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제품을 본격 출시한 원년인 83년 한 해 25만 달러어치를 팔았다.

물론 숱한 위기를 넘겼다. 첫 수출을 앞두고 제품에 결함이 발견됐다. 물건은 이미 선적된 상태. 심각한 결함은 아니어서 값을 좀 깎는 선에서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세계 최고 품질이란 소리를 듣겠다”는 쪽을 택했다. 까다로운 재통관 절차를 거쳐 제품을 모두 회수하고 지루한 밤샘 작업 끝에 물건을 제대로 만들어 납기 안에 실어 보냈다.

4년간 수출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그는 85년 국내시장 공략에 나섰다. 국내시장 개척이 더 힘든 것 같았다. 품질 좋은 일본 제품에 수십 년간 길들여진 도매상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품질은 결국 통했다. 일본 제품을 서서히 밀어내면서 절삭 공구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지금은 국내 엔드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엔드밀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하겠다는 그가 세운 전략은 글로벌화다. 92년 미국에 공장을, 96년에는 영국에 현지 법인을 세웠다. 현재 미국과 프랑스·중국·인도에 공장을 가동 중이다. 그는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를 둬 시장의 위험을 분산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산업 등 주요 산업의 성장세가 가파른 중국 시장 공략에도 적극적이다. 지난달 열린 중국 칭다오 공장 준공식에는 바이어나 거래 업체 인사 130여 명을 38개국에서 초청했다. 이 행사를 위해 한국에서 전세기까지 띄웠다.

세계 최고를 꿈꾸는 그는 연구개발(R&D)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인천 송도 테크노파크의 R&D센터에서는 연구인력 45명이 일한다. 그는 “국내 공장을 R&D 기지와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출창구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품질을 판매로 연결시키는 전략은 ‘고객 감동’이다. 91년의 일이다. 대만 바이어가 클레임을 걸었다. 원인을 찾으려고 기술자와 함께 대만으로 날아갔다. 바이어의 재고 창고에서 이틀 내내 제품의 포장을 일일이 뜯고 현미경으로 모든 제품을 살피면서 불량품을 찾아냈다. 사장이 팔을 걷고 일하는 모습에 감동한 바이어는 수십 만 달러였던 주문량을 100만 달러로 늘렸다. 그는 “누구나 실수하지만 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빨리 대응하는 건 누구나 못한다”고 말했다. 직원도 고객이다. 사장은 임직원들을 지휘하지만 동등한 입장에서 몸을 부대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매일 아침 작업장을 돈다. 야간작업을 마치고 퇴근하는 근로자들, 중간작업을 위해 출근하는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려는 것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으로 큰 꿈을 꾸자”고 말하곤 한다. 엔드밀이라는 한 우물을 파서 이 분야의 세계 1위가 되자는 것이다.

2014년 1조원 매출도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라고 임직원들을 독려한다. 그는 “공구의 질이 좋아지면서 시장이 더 커지지는 않겠지만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경쟁력 있는 제품을 내놓고 이를 통해 점유율을 높이겠다”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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