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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엽기적 살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프랑스 작가 앙드레 지드가 1914년에 발표한 소설『교황청(敎皇廳)의 지하도』에는「살인의 돌발성」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유미주의자(唯美主義者)가 동행한 여행자를 아무런 이유없이 열차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려 결심하는 것이다.지드 는 이것을「무상(無償)의 행위」라 명명했고,옥스퍼드판 프랑스 문학안내에서는「스릴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저지른 지각없는 행동」이라고정의한 바 있다.그러나 인간사회에서 빈발하는「동기없는 살인」에대한 심리학적 수수께끼는 오랜 세월 동안 풀리지 않고 있다.
「사회 전체에 대한 적대감」이나 「돈이 필요해서」따위가 살인의 동기로 등장하는 경우에도 범죄자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동기가 될는지 모르지만 범죄심리학에서는 그것을 살인동기로 간주하지않는다.좋은 예가 있다.76년 미국 캘리포니아州 초티라라는 작은 마을에서 세명의 청년이 26명의 어린이가 탄 스쿨버스를 탈취해 운전사에게 1백60㎞로 달리라고 명령했다.이웃 다른 마을주민들에게 당한 수모(受侮)가 이유였고,화물차를 땅속에 묻어 만든 일종의 지하감옥에 인질들을 몰아넣었다.
인질들이 극적으로 탈출해 범인들은 체포됐지만 이웃마을 주민들에 대한 복수와 스쿨버스 탈취가 과연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아무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라 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 잠재돼 있는「광기(狂氣)의 횡포」는 논리적으론 설명이 불가능하다.그것을 사르트르는 칠면조가 목을 모래속에 처박으려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은「마술적 사고(思考)」라 표현한 적이있다.간과할 수 없는 것은 동기가 불분명한 살인 일수록 그 수법은 더욱 잔혹하고 엽기적(獵奇的)이 된다는 점이다.통제(統制)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기 때문이다.
이번 영광(靈光)에서 발생한 엽기적 연쇄살인사건도 범인들이 말하는 동기라는 것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데다가 그 수법이 너무나도 참혹하고 잔인해 우리가 저네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광기의 횡포」를 폭발시킬 기회만 노리고 있는 자들의 공통된 특징은「탓해야 할 대상」을 찾느라 항상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는 점이다.그 시야에 들어가지않도록 조심하는 것만이 상책(上策)인 세상이 돼버렸으니 서글픈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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