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육이변해야미래가산다>8.끝 평준화는 이제 끝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국민학교 3학년 남자아이를 둔 30대초반 가정주부가 교육 시리즈 취재팀에 전화를 걸어 하소연한 사연은 우리 평준화 교육의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20여차례 읽은 삼국지(三國志)의 각종 고사성어(古事成語)를일상생활에서 막힘없이 구사하고,상당한 수준의 컴퓨터 업무용 프로그램인 로터스도 학습에 활용하는 아들이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고 있다는 얘기였다.
50대 후반의 담임교사는 아들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꾸짖거나 심지어 때리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전학갔으면 좋겠다』는아들의 말을 듣고 사설(私設)로 운영되는 영재학원을 찾아 다니고 있지만 마지못해 다니는 학교 수업이 아들에겐 고역이라는 얘기였다. 우리나라 교육의 병폐는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처럼 학생들의 다양한 개성을 살리는 통로가 없어 분야별로 뛰어난 학생들이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교 평준화로 대표되는 이 경직된 교육제도가 우리 교육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실체라는 게 교육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고교 평준화제도가 중학생들의 건전한 정신적.신체적 발달,중학교육의 정상화등에 어느정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이 제도가 우리 교육에 많은 폐해와 부작용을 가져온 점도 부인할 수없다. 우선 고교 학습집단의 개인차가 확대돼 교사들의 학습지도에 어려움이 뒤따랐다.우수학생은 우수학생대로,지진 학생은 지진학생대로 학교 수업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어 이들을 각자 수준에 맞는 입시준비를 위한 과외전선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왔다. 『수업을 비롯한 학교의 일반 교육활동이 중간 수준의 다수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져 수월성(秀越性)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朴富權 동국대교수).
한마디로 우수학생을 보통학생으로 만드는 「하향평준화」가 되고말았다.최근 미국 교육평가 위원회(ETS)가 실시한 과학 학력국제평가에서 우리나라의 국교생은 3위,중학생은 5위,고교생은 15위를 차지했다.또 90년 세계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한국 고교생의 실력은 32위로 87년 첫 출전 당시 19위에서 해마다뒤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우리 학생들의 학력이 국민학교에서중.고교로 올라갈수록 떨어지고 세계수준과 격차가 커지는 것이다. 평준화제도는 공.사립을 막론하고 학생들을 추첨으로 배정하고학생의 공납금도 공.사립간에 차별을 두지않기 때문에 사립학교가설립이념을 살려 다양하고 특성 있는 교육을 펼 수 있는 길을 막았다. 중등교육의 근본 성격을 엘리트교육에서 대중교육으로 바꾼 20년동안의 평준화제도는「교육에 관한 한 무엇이든 동일해야한다」는 왜곡된 의식을 심어줬다.
획일화된 교육은 학생의 개성을 매몰시키고 소질과 창의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봉쇄했다.실제로 고교의 목표는 명문대학의 합격자수에만 있을 뿐 학생의 개성있는 성장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뜻있는 교육계 인사들은『현재의 교육 상황을 그대로 두는 것은 범죄행위』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사회적.교육적으로「평균인」을 양성하는 우리 교육이 경쟁력을 최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부응할 수 있는 두뇌자원을배출하기 위해 이제는 평준화의 틀을 깨야만 한다.
***速進길도 열어줘야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적 가치를 찾아원하는 교육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학교도 건학(建學)이념등 스스로 개성을 찾도록 숨통을 열어주기 위해서 현행 평준화정책은 보완돼야 한다』(李宗宰 서울대 교수).
적어도 교 육개혁위원회가 최근 제시한 것처럼 정부의 재정지원없이도 자립할 수 있는 사립고교중 희망하는 학교에는 학생선발권을 부여하고 학생과 학부모에게도 학교선택권을 줘야 한다.
더 나아가 공립고교의 경우도 희망하는 고교는 연합고사를 거친학생들의 지원을 받아 배정하는 방식을 거쳐 단계적으로 학생 선발권을 부여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능력이 탁월한 학생은 속진(速進)할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한다. 『자질을 가진 학생이 적절한 학습환경을 선택하고자 학적을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거쳐야만 상급학교에 조기 진학할 수 있는 현실은 개선돼야만 한다』(趙夕姬 교육개발원 교육연구부장).
86년부터 과학기술원이,93년부터 예술종합학교가 재능아들에게조기진학의 기회를 일부 허용했으나 이 정도의 속진은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많은 인재들의 잠재능력을 계발시켜 주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최근 미국에서도 영재(英才)교육을 역설하는『엘리트주의 옹호』라는 책이 주목을 받고있다.누구나 받을 수 있는 교육 못지않게뛰어난 인재를 키울 수 있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오늘의 추세인 것이다.
〈都成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