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질긴 목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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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창하오 9단(중국) ●·이세돌 9단(한국)

장면도(48~57)=패망선(1선)은 절벽 끝에 해당한다. 그곳에서 쭉 뻗은 흑가 비수처럼 백의 목젖을 노리고 있다. 쌍방 위태로운 모습이고 필사적이지만 백 쪽에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참고도’ 백 1로 두는 수가 있지 않을까. 흑 2로 파호할 때 3으로 끊는 수 말이다. 얼핏 그럴싸하지만 이건 패망의 지름길이다. 흑은 4로 몰아 두 점을 죽이고는 6으로 가만히 잇는다. A로 잡으면 흑 B의 단수. 백 8점이 떨어지며 바둑도 끝나게 된다. 사실 군자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이처럼 치명적인 바둑을 두기 힘들다. 동작이 조금만 어긋나도 바로 죽음과 연결되는 이런 바둑은 너무 살벌하다. 신기한 것은 수양 깊은 창하오가 ‘살쾡이 과’의 대명사 격인 이세돌을 상대로 이런 바둑을 자청했다는 점이다. 검토실에서 때 이르게 ‘단명국’을 점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창하오 9단은 48로 조용히 끊어 간다. 일단 흑의 허리를 끊어 어수선하게 만든 다음 55까지 ‘이단패’의 끈덕진 자세를 취한다. 이제 흑도 백의 목숨을 완전히 끊으려면 물경 ‘3수’를 들여야 한다. 다들 죽었다지만 아직은 질긴 목숨이다.

흑이 3수를 둘 동안 백은 무슨 일을 벌이는 게 최선인가. 우선 C로 젖혀 수상전을 벌이는 것은 단패를 만들 수 있으나 팻감이 한 개도 없는 터라 하책 중 하책에 속한다. 창하오 9단은 D로 나가 흑 E 받을 때 F로 끊어 전선을 확대했다. 그러고는 단명국의 예상을 비웃듯 국면을 팽팽하게 이끌어간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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