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전문가 뚜버기의 주관적이고도 사소한 이야기 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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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도 모르는 路上 변신

길을 걸을 때는 천사처럼 보이다가 걷기를 멈추고 한곳에 자리를 잡는 순간 악마같이 변신하는 존재들이 있다. 마치, 동물원 유리창 안에서 보던 악어를 야생에서 맞닥뜨렸을 때의 당황스러움이라고나 할까? 야생동물들이야 태생이 그러하니 우리 밖으로 나왔을 때 본능을 따르는 것을 ‘순수함’이라 이해한다고 쳐도 사람들은 왜 그럴까? 카프카게 물어보면 알려줄는지.

그 대표적인 존재들은 바로 정치인이다. 선거철이 되면 한없이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90도 각도로 인사를 한다. 생전 본적도 없는데 얼굴에 하회탈 주름이 새겨지도록 웃으면서 손을 내민다. ‘어머나 징그러워.’ 피하고 싶지만, 느끼 + 뻔뻔으로 둘러싸인 그 아우라에 소시민들은 어느새 깔끔하게 씻고 나온 손을 빼앗기곤 한다. 노인에게 공손하고 어린이에게 다정한 그들은 여의도에 있는 K-1 공식 격투기장(정식 명칭은 국회의사당이라지)에 자리를 잡는 순간 흉폭한 광전사(Berserker)로 변신한다. 소시민이 그들의 미소 띤 인사를 또 받으려면 다음 선거인 4년 후까지 기다려야 한다. 요즘은 풀뿌리인지 파뿌리인지 소시민을 위한다는 집단이 더 늘어서 졸지에 노상인사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사무라이 계층은 일반 농민들을 한 칼에 응징하는 권리를 가졌다고 하던데, XX의원님들 역시 한 ‘말빨’에 소시민들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으니 이들은 피할수록 좋다. 안면을 익힌 사이라고 친하게 다가갔다가는 키우던 사자에 물려 죽은 사람처럼 해외토픽에 오를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변신의 귀재 XX의원님들과 뗄 수 없는 공무원님들도 계시다. 분명 스스로 공복(公僕)이라며 시민의 ‘종’을 자처하는 분들. 가끔씩 촌스러운 복장과 얼굴로(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공무원스러운 패션의 리더이시다) 아침에 피켓을 들고 계신다. 아직까지 제대로 집중한 적이 없어서 구호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대부분 ‘XXX을 합시다/지킵시다’가 아닐까 싶다.
자칭 타칭 국민의 종이란 이분들 역시 자기 집인 관청에서는 변신한다.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절대무공 이른바 ‘법대로’ 초식은 가히 최강이라 할만하다. 한번 당해보면 눈물 난다. 어떤 사연과 어떤 상황에서도 ‘법대로’ 초식이면 다 해결된다. 법치국가에서 법대로 한다는 데 뭐가 잘못이냐고 오히려 따진다면 글쎄…,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고’라고 답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공무원들은 옛날에 비해 굉장히 친절해 졌다. 친절한 표정으로 ‘이거, 저거, 이거, 저거, 한 번 더’ 들이미는 각종 법규는 ‘친절한 금자씨’로부터 사사 받았는지 그저 무서울 따름이다. 무서워서 차마 물어보지 못한 일이 하나 있다. ‘종’이라면 주인이 불편하지 않도록 처신하는 것이 맞을 텐데 왜 아직도 일반 회사원들이 상사 눈치 안보고 찾아갈 수 있는 시간에는 문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는 것일까? 내게는 주말에 관공서 일 좀 처리해보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있다.
금융기관들 역시 공무원님들 못지않게 ‘열심히 하겠습니다’를 외치지만, 허허. 돈 없이 금융기관을 찾는 것은 숙제를 하지 않고 선생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가슴이 콩닥거리는 일이다. 모르겠다면 한번 가봐라. 당해보면 안다. 왜 살인적인 대부업체들이 무려 50%에 가까운 금리를 최저금리라며 선전하는지. 길에서 ‘저희 은행을 찾아주세요~!’라며 수줍어 하던 분들이 얼마나 높고 말 걸기 어려운 분들인지 돈 없이 찾아가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위에 나온 분들은 그래도 인간냄새가 난다고 여길 정도의 고수가 한 분 남아있다. 초대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멋지고 부드러운 신사이지만, 초대를 수락하고 그들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사실은 흡혈귀였음을 알게 해주는 그분을 우리는 속칭 ‘삐끼’라 부른다. 그들의 핏속에는 분명 사람의 피가 아닌 드라큘라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순진하게 삐끼를 따라가는 것은 피라미드업체의 조직원을 따라가는 것, 호랑이 굴에 맨손으로 들어가는 것과 동일한 위험의 정도를 가진다. 차라리 정신이라도 차리면 살아날지 모르는 호랑이 굴이 덜 위험하지 않을까.
길은 혈관과 같다. 혈관 속에는 피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치명적인 바이러스도 같이 흐른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듯 사회의 모든 길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같이 걷고 있다. 어디로 어떻게 걸어야 할지 그리고 누구와 걸어야 할지는 내 다리의 주인공인 바로 자신이다.

뚜버기 프리랜서

※ ‘걷기전문가’임을 자처하는 필자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신념으로 멀쩡한 본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오프 칼럼니스트로서의 생활을 포기하지 않는 인터넷시대의 소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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