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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떡값 검사 여럿" vs 삼성 "근거 없는 폭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용철씨, 회견서 주장

김용철 변호사는 5일 "삼성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사건과 관련한 증거와 증인을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서울 제기동 성당에서 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다. 그는 "에버랜드 사건은 1996년 말에 일어났는데 나는 97년 8월에 입사했고 나중에 법무팀장으로 일하면서 법무팀을 지휘해 검찰 수사에 대한 대응 등 업무를 분담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모든 증인과 진술을 조작해 돈과 힘으로 법원을 모욕했는데 법무팀장인 나도 중심에 서서 그 일에 관여한 공범이었다"고도 했다.

이에 앞서 김 변호사는 김인국 신부를 통해 "에버랜드 1심 재판장에게 30억원을 주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신부는 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 일 이후로 (김 변호사가 삼성) 내부에서 따돌림을 당하다시피 했고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삼성이 조직적으로 명절 떡값 등을 주면서 검찰.국세청 등을 관리했다는 주장도 했다. 그는 "현직 최고위급 검사 가운데도 삼성 돈을 받은 사람이 여럿 있다"고 밝혔다. "삼성에서 불법 로비는 모든 임원의 기본 책무이었고 나는 법조계를 담당했다"며 "구조본에서 검사 수십여 명을 관리했으며 나머지 분야는 60여 개 계열사가 나눠 맡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고한 것과는 달리 돈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진실 규명이 지지부진하고 삼성이나 검찰 등 국가기관이 제 본분을 다하지 않을 경우 공개하겠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는 "부장검사급 이상 검찰 간부 40여 명에게 명절.휴가 때 한 번에 대략 500만원씩 건넸는데 검사장급은 1000만원 이상 건네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조직 중 작은 편이었으며 이해 관계가 맞물린 재경부나 국세청은 (로비) 규모가 훨씬 더 컸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 40~80명에게 1년에 500만~2000만원씩 명절 때 건넨 떡값보다 국세청 인사들에게 준 것은 '0'이 하나 더 붙는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 내부에서 자신의 역할과 관련해 김 변호사는 'S급 인재'라고 언급했다. S급 인재란 혼자서 1만 명을 먹여 살릴 만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삼성의 핵심 인재를 뜻한다. 그는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회사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구조조정위원회에 참석하고 이건희 회장 집에서 열리는 초호화 파티에도 초대받았다고 밝혔다. 연봉이 10억원대였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필요가 없는 대우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삼성이 임직원들을 통해 차명으로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언급도 이어졌다. 김 변호사는 "차명 비자금을 가진 임원 명단도 일부 갖고 있는데 이는 금융실명제법 등 실정법을 위반한 명백한 범죄"라며 "하지만 삼성 안에서는 차명계좌를 가진 것 자체가 승진의 징표이자 일종의 훈장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의 고위임원과 핵심 보직 인원 상당수가 차명계좌를 가지고 있으며 차명 비자금을 가진 임원 명단도 일부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27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김 변호사는 "삼성이 (내 명의의 계좌로)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삼성본관 2층 소재)에 거액의 비자금을 은닉하고 있었다"며 자신의 이름으로 관리된 비자금의 규모를 50억원 안팎으로 추정했다. 그는 "내가 입사할 때 제출한 주민등록증 복사본과 자기들이 임의로 만든 도장을 이용해 (삼성이) 수시로 신규 통장을 개설하고 해지했다"고 주장했다.

김승현.문병주 기자

삼성, 침묵 대신 맞대응

"근거 없는 폭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김용철 변호사의 각종 의혹 제기에도 그간 '침묵'을 고수해 온 삼성이 5일 맞대응을 통한 정면 돌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봤지만 온갖 억측과 오해만 더 키웠다는 판단에서다.

삼성 관계자는 "그룹의 이미지가 훼손되고 정상적인 경영 활동과 글로벌 사업이 심각하게 위협 받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삼성은 김 변호사의 '양심의 발로에 따른 폭로' 주장에 대해서도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일축한다. 그룹 고위 임원은 "2004년 퇴직 뒤 최근 3년간 고문변호사로 매달 2000여 만원 씩을 받을 때만 해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고문 계약이 끝날 무렵에 뜬금없이 '삼성 의혹'을 터트리겠다고 전해 왔다"고 밝혔다. 한편 재정경제부도 이날 '이해관계가 맞물린 재경부는 (삼성의 로비) 규모가 더 컸다'는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반박 성명서를 냈다. 재경부는 "개별 기업과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정책을 수립.집행하지 않는다" 며 "그의 근거 없는 주장은 재경부에 대한 국민들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 에버랜드 사건 조작.축소 여부=위증을 사주하고 참고인들을 빼돌리는 등 재판을 방해했다는 주장에 대해 삼성 측은 "터무니 없다"고 말했다. "무려 3년 반에 걸쳐 시민단체와 언론의 눈길이 쏠린 가운데 방대한 검찰 수사가 이뤄진 재판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겠나"라는 게 삼성의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에버랜드 1, 2심 재판에서 피고인과 변호사들은 검찰의 증거 제시에 거의 대부분 동의했고 대체로 검찰 입장대로 사실 관계가 확정됐다"며 "다만 법률적 해석과 판단에 대해서만 검찰과 피고인 변호사들이 의견을 달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증인을 어떻게 빼돌려 수사를 방해했는지 (김 변호사가) 분명히 밝혀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 재판장에게 30억을 주라는 지시 여부="에버랜드 재판장에게 30억원 갖다 주라는 지시를 거절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이라는 김 변호사의 주장은 시점이나, 논리적으로 모두 맞지 않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김 변호사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2003년 말부터 퇴직한 이듬해 4월까지 업무에서 '배제'됐는데, 2004년 3월 말에 시작된 에버랜드 1심 재판장에게 30억원을 가져다 주라고 '은밀하게' 지시를 받았다는 게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변호사는 최근 '한겨레21'과의 인터뷰 (10월 29일)에서 "2003년 말부터 대선 자금 수사가 진행되는 6개월 동안 업무에서 배제됐다. 나하고는 의논을 안 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 법조인에게 '떡값' 제공했나=삼성은 검사나 판사를 상대로 떡값이나 휴가비 등을 돌린 적이 없으며 김 변호사에게 그 같은 일을 지시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만일 김 변호사가 법조계 인사들을 만나 술을 마시거나 식사를 했다면 이는 전적으로 '사적인 자리'일 뿐 이라고 덧붙였다. 삼성 측은 "김 변호사가 현직 검사 출신으로 처음 입사한 케이스여서 예우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며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로비를 지시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김 변호사는 S급 핵심 인재인가='나는 수퍼(S)급 인재'라는 김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삼성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가 법무팀에서 일한 것은 맞지만 자금 관리 업무를 맡아본 적이 없을 뿐더러, 당시엔 운영팀장이라는 직제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S급 인재는 세계적 엔지니어나 마케팅 전문가 등에 해당되는 것이지, 김 변호사 같은 '스태프'는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 50억원 차명계좌에 대해=차명계좌에 대해 삼성은 "삼성 임원이 김 변호사의 승낙을 얻어 개설한 개인적인 위임 통장"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차명계좌는 김 변호사가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에서 일할 당시 동료가 그의 양해를 얻어 개설해 놓은 통장이라는 것이다. 삼성 측은 "김 변호사가 퇴직 후에도 해마다 이 통장에서 발생하는 세금을 건네받아 자신이 대신 납부해 왔기 때문에 이 돈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표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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