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겹게 하는 건 당신 자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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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20면

‘창의적으로 사는 법 88가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원제는 『The Creativity Book』. 요즘 인재경영에서 각광받는 화두인 ‘창의성(력)’이 주제다. 그 때문에 직장인을 위한 자기계발서쯤으로 치부될 수 있겠으나 펼쳐보면 다르다. 과장한 듯한 번역 제목이 실은 더 어울린다.

“일상에서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자 하고 모든 일을 창조적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신간이 제시하는 88가지 항목을 보자. 예컨대 공간. 넓은 공간, 가구가 잘 갖춰진 공간은 소용없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맞춰 새롭게 정리하고 꾸민다. 사진작업을 하고 싶다면 식탁이 있던 공간을 암실로 쓰고, 손님은 다른 데로 모시면 그만이다. 구획화된 삶을 벗어나는 작은 반란인 셈이다. “공간이란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단순하게 일러준다.

소설가나 작곡가·미술가를 꿈꾸지 않아도 좋다. 지친 일상을 마치고 귀가하면서 ‘정말 이렇게 사는 길뿐일까’ 되뇌어보지 않은 이가 있으랴. 그런데 스스로의 삶을 창의적으로 가꾸는 걸 막는 것은 주로 내적인 것이다. 예컨대 실패. 아주 사소한 실패(체육시간에 배드민턴을 못 쳤다!)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다음 성공의 기회를 지레 포기할 수 있다. “지나간 실패에 대해 스스로를 용서하라”는 게 저자의 권유다. 방법은 이렇다. 망쳐버린 독주회, 타지 못한 장학금, 형편없던 애인 등을 종이에 적은 뒤 하나씩 지우고 “나를 용서하노라”고 외치란다.

싫증ㆍ미지ㆍ친구ㆍ해명 등 갖가지 항목에서 저자는 저명한 작가의 글을 인용하기도 하고, 그간 상담했던 필부필녀의 사례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매번 구체적인 실천지침을 써놓았다. 찬찬히 읽다 보니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류의 심리치유서다. 나를 어떻게 관리하고 가눌 것인가를 조곤조곤 귀띔하고 있다.

결국 창의적인 것은 이 책이다. 자기 바깥에서 위로와 구원의 말을 기대하는 현대인들에게 고금의 지혜를 세련되게 다시 포장했다. 그런데도 마음에 와닿는 저자의 화법이 ‘나만의 창의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실패한’ 소설가이자 ‘성공한’ 심리상담가로 정의하는 지은이는 한국에서 미군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는 심리학박사다. 여행에세이 『보헤미안의 샌프란시스코』(북노마드)도 동시에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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