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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비즈니스 메카로] 2. 우리도 일자리를 만들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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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의 경제발전은 노동력이란 비밀무기 덕분이다. 근로자들이 똑똑하고 성실하며 직업의식과 기술력도 뛰어나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에 들아와서 일한다."

"노조의 힘이 너무 세다. 타협을 모르며 극단적이다. 경영이 어려울 때 인원을 정리하지 못하니까 신규 채용이 힘들다. 파업하는 것을 보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

한국의 노동환경을 보는 외국 기업 경영자들의 시각은 애정과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한국 노동력의 질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면서도 노사 관계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흔든다.

"사스가 기승을 부린 지난해 초 사스의 발원지도 아니고 환자도 거의 없었던 한국의 호텔업계가 홍콩과 싱가포르보다 더 타격을 받았다. 다른 나라 호텔은 수입이 줄어든 만큼 인원도 감축해 경비를 줄였는데 한국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태미 오버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수석부회장)

외국 기업 경영자들은 이처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인원조정 가능해야 일자리 마련에 도움=회사 경영이 어려운데도 해고 자체가 어렵고 그에 따른 비용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기업들이 계약.임시직을 중심으로 필요한 인원을 메우는 바람에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청년실업도 심각해진다는 것. 경영상황에 따라 해고할 수 있고 그 비용이 줄어들면 더 많은 일자리 마련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2002년 말 현재 국내 외국인 투자기업의 근로자는 5만여명으로 전체 제조업체 근로자의 8%를 차지한다.

"정상적인 해고가 어려워 돈을 더 주며 조기 퇴직시킬 수밖에 없다. 일 잘하는 사람보다 능력이 떨어져 내보내는 사람에게 돈을 들이는 이상한 체제다. 우리도 능력있고 일 잘하는 사람을 더 많이, 더 오래 고용해 함께 일하고 싶다."(에드워드 캘러허 뱅크오브아메리카 대표)

"1998년 은행들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일반 퇴직금보다 많은 명예퇴직 위로금을 주었다. 경제위기 때 퇴직시키면 평소보다 퇴직금을 덜 줘야 하는 것 아닌가."(제임스 루니 마켓포스 대표)

"기업은 경영환경에 따라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을 해야 지탱할 수 있다. 한국에선 부도 직전까지 가야 인원을 정리할 수 있어 기업들이 힘들어한다."(태미 오버비 수석부회장)

◇법과 원칙을 지키자=오웬스코닝 한국 공장은 지난해 파업 전까진 전 세계 21개국에 있는 공장 중 가장 우수한 편에 속했다. 그런데 한번 파업으로 13년 동안 미국 본부와 쌓아온 신뢰에 금이 갔다.

지난해 문을 닫은 마산시티즌에선 노조가 법정 퇴직금 외에 공장 이전에 따른 '위로금'을 지급하라며 8개월 동안 공장에서 농성을 벌이고 노조 대표가 일본 본사를 찾아갔다. 회사가 여러 차례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지만 경찰은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회사가 위로금을 주는 쪽으로 해결했다.

"노조의 과격한 행동은 일자리 파괴 행위나 마찬가지다. 과격해야 얻어낼 수 있다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제임스 루니 마켓포스 대표)

지난해 분규를 겪은 일부 외국 기업들이 노조에서 인사권을 포함한 경영참여 요구를 받았지만 한 곳도 양보하지 않았다. 다국적기업에서 경영권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외국계 기업 경영자들이 "노조가 경영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면 상당수 외국계 기업들은 짐을 싸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단체협상에서 '직원의 승진이나 징계시 노조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인 한 외국계 기업이 철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노조위원장이 인사권을 가진 셈으로 직원의 절반이 넘는 노조원들이 노조 사무실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회사에선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전한 KOTRA 관계자는 "노조가 사실상 회사를 '접수'한 형국"이라며 "고용을 보장하기 위해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노조가 회사를 망치고 결국 일자리마저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우수한 노동력, 파업으로 이미지 망친다=외국 기업 대표들은 한국 근로자의 자질에 높은 점수를 준다. 교육수준은 물론 기술력과 직업의식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지키기는커녕 파업이 끝나면 '앞으로 잘하자'며 격려금을 주는 일부 기업의 행위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

"근로자들의 적응력이 대단하다. 파업으로 잃은 것도 많았지만 파업이 끝난 뒤 경영 정상화가 다른 나라 어느 공장보다 빨랐다. 이런 적응력으로 노사문화의 선진화를 앞당겨야 한다."(제임스 블래직 한국오웬스코닝 사장)

마르코스 고메즈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회장은 다음과 같은 경험담을 털어놓으며 언론의 균형있는 보도를 당부했다.

"어느 날 독일에 있는 아들이 안부 전화를 걸어 '한국이 불타고 있느냐'고 물었다. CNN에서 불타는 사업장 화면을 본 모양이다. 사실 그런 과격한 시위를 하는 곳은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에 나와 있는 우리야 실상을 알지만, 다국적기업 본사나 밖에서 한국을 보는 사람들은 사업장에서의 폭력행위와 본사 원정투쟁에 화들짝 놀란다."

◇특별취재팀=김정수 경제연구소장, 양재찬.신혜경 전문기자, 이종태.김광기 경제연구소 기자, 이승녕.하현옥 정책기획부 기자, 홍주연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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