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를찾아서>8.월터 리프먼著"여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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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여론이란 무엇인지를 꼬집어 정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여론이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외연과 내포가 넓고 깊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반적으로 여론이라는 것은 공공적인 사안이나 관심사에 대한 개인 의견을 수집해 놓은 것쯤으로 치부하 고 있다.그리고 여론은 개인의 행위를 규제하고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치며집단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동인(動因)으로 정의되고 있다.
여론에 관한 연구 경향은 대체로 네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첫째는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양적(量的)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이다.두번째는 개인의 의견이 어떤 방법을 통하여 여론으로 바뀌는지를 알아 보려는 시도를 지적할 수 있다.세번 째는 형성된여론이 정치적으로 어떤 작용을 하며 그 영향력은 무엇인지를 기술하거나 분석하려는 쪽이다.마지막으로 언론매체를 비롯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과 여론 확산,형성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노력등으로 간추릴 수 있다.
월터 리프먼은 민주사회에서 정치와 일반 대중을 이어주는 끈으로서 여론을 보았고 이들의 관계를 규명하려고 애썼다.그는 정치인들이 정책을 발표하거나 시행할 때 구호나 상징등 단순한 표상물을 통해 국민들로 하여금 일정한 방향으로 생각하 고 또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졌다.리프먼이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지적(知的)성장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리프먼은 하버드대학에 재학중일 때 사회주의에 빠졌고 스스로를사회주의자라고 부르기도 했다.그는 월리엄 제임스로부터 실용주의를,조지 산타야나로부터는 인본주의를 배우기도 했다.또 간접적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심층심리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행동을구체화시키는 내면의 틀,본능적인 동기등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토머스 제퍼슨의 평등주의나 해밀턴의 민족주의 그리고 영국의 페이비어니즘(점진적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이같이 여러 가지 사상을 섭렵하였기 때문에 사회현상을 보는그의 통찰력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그는 스스로를 보수적인 시민이라고 얘기하면서 그러나 언제나「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갖춘 성숙한 시민」이라고 평가했다.
리프먼은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다.그리고 인간의 이성적인 활동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이성적인 활동은 복잡한 인간의 삶을 전진시킬 수 있고 또 삶을 만들어 가는 틀을 제공해 주는 문화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성적인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믿을만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계속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인간은제공된 정보를 통하여 적절하고 합당한 목표를 정하고 또 개인의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틀을 만들게 된다는 것 이다.뿐만 아니라 정보가 제때 제대로 제공된다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고 주장했다.그러나 정보를 주로 제공하는 언론이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1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유력신문들이 소문이나 상상력에의존하여 사회 현실을 선택적으로 보도하고 있음을 알고 『여론』이라는 책을 펴냈다.『여론』의 첫머리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에서 일어난 상상적 사건으로 시작된다.대륙과 커 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는 이 섬의 주민들은 두달에 한번씩 오는 우편선이 제공해 주는 소식에 따라 삶을 꾸려 나가게 된다.
두달이라는 시간적인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섬주민들은 우편선이 전해 주는 대륙의 소식을 근거로 친구로서 혹은 적으로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즉 우편선(언론매체)이 전해주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 유사환경(類似環境.Pseudo-en vironment)이라는 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할 때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기 보다는 우리 머릿속에 있는 어떤 상(像)과 부합하는 것만을 간추려 받아들인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리프먼은『우리는 먼저 보고 나중에 정의를 내리지 않고 반대로 정의를 내리고나중에 본다.… 또 우리는 고정관념(Stereotype)화한 것만을 추려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적고 있다.바꾸어 말하면 언론 매체가 제공하는 정보도 매체의 스테레오타입의 여과기를거친 것이지 모두 다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리프먼은 뉴스나 정보가 겉에 나타난 현상만을 단순 기술하고 있어서 전체를 조감하는 자료로 쓰이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리프먼은 이같은 언론의 활동을 다음과 같은 말로 대신하고 있다.『뉴스는 땅속에서 어떻게 씨앗이 발 아되는지를 알려 주지 않는다.싹이 터서 땅위로 솟을때 이를 알려준다』고 말하고 있다.즉 언론이 전해주는 것은 피상적인 것일뿐 사회현상에 대한 실체는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와 진실은 달라 리프먼의 이같은 주장은 정보(뉴스)와 진실은 엄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한것이다.언론이 전해 주는 뉴스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제작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고정관념이나 편견의 여과장치를 통과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더구 나 모든 사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정치인이나 선전가들에 의해 이용된다면 이것은 큰 불행이라는 것이다.
정보(뉴스)와 현실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리프먼은 사실을 간추리고 가다듬을 수 있는 정보처리전담부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국외자와 정책결정을 내리는 전문가 사이에 진실이나 사실을 가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기도 했다.
요컨대 리프먼은『여론』이라는 책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이성적인 활동이 확충되었을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또 인간의 이성적인 활동은 제대로 된 정보를 제때 공급받을 때 힘을 발휘하게 된다고 진단했다.이 책은 미국의 언론이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이끌고 나아가는 견인차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적인입장에서 쓰여졌다고 볼 수 있다.
朴永祥〈漢陽大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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