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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대법원 상징 문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백여년의 역사를 가진 美國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을 거친 사람은 불과 1백명 남짓하다.임기가 따로 없이 한번 임명되면 자연사하거나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한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는 종신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공석이 생겼을 때만 대통령이 上院의 인준을 얻어 임명하므로 대법관의 임명권을 행사하지 못한 대통령들도 많다.
대법원장을 포함해 9명에 불과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법관들은 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매년 하급법원으로부터 上訴돼 올라오는 수천건의 소송사건 가운데 국민의 법률생활을 좌우할 1백50건 정도만을 심리하기 때문이다.그중에서도 대 부분은 법해석에 관한 것이거나 의회의 입법취지 해석에 관련된 것들이다.대법원 업무의 상당량은 법률이나 명령이 헌법에 부합되는지 여부를결정하는데 할애된다.獨逸등 유럽의 선진국들도 비슷하다.이것이 바로 한나라 최고재판소의 권위를 높여 주는 요체로 작용한다.
한사람의 대법관이 매년 평균 1천건이 훨씬 넘는 본안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우리 대법원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라 할 수 있다.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중 이유가 있어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는 경우가 8%에 불과하다니 이 정도면 우리나라 대법 관이 얼마나일에 시달리는지 짐작이 갈만 하다.
한 법학교수는 이같은 우리나라 대법원의 현실을 놓고『우리 국민은 대법원을 은행 본점이나 시청의 민원창구 취급을 하는 것은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개탄한 적도 있다.대법원의 권위는 그 명칭으로 얻어지는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뒷받침 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내년 6월 준공되는 서울 서초동 청사 전면에설치될 상징조형물과 거기에 새겨넣을 상징문안을 마련한 모양이다.그 또한 제도적인 문제점의 해결이 전제되지 않는한 권위와 함께「상징」만으로 남게될 가능성이 크다.公募한 상징문안은 「자유.평등.정의」로 정해졌다고 한다.미국의「법앞에 평등」이나 프랑스의「자유.평등.박애」와 같은 상징문안에 뒤지지 않지만 상징조형물이나 상징문안이 제아무리 훌륭한들 무엇하나.정치로부터 초연하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대법원의 새로운 위상이 정립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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