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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명박→땅바기, 개성동영→효도정 ‘악칭’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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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이 자신의 주요 공약을 내세워 경쟁적으로 4자성어 애칭을 만들고 있다. 업적이나 정책적 지향을 단일 브랜드로 개발해 이미지화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네티즌 사이에서는 후보의 약점을 집어내 만든 비꼼의 별칭이 더 인기다. 2002년 제16대 대선 때 유행했던 패러디 문화의 연장선인 셈이다.

◇땅바기 vs 효도정=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겨냥한 별명이 가장 많다. 각 당에서는 운하(運河)명박ㆍ성공명박, 개성(開城)동영ㆍ행복동영 등으로 핵심 슬로건을 만들었지만 이는 후보의 희망사항일 뿐 네티즌은 이에 동조하지 않는 것 같다. ‘운하명박’이라는 말에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이 후보의 의지가 실려있다. ‘성공명박’ 역시 ‘국민성공시대’라는 캐치 프레이즈에 걸맞게 이 후보의 대표적 브랜드로 키웠다. 이 후보 팬클럽 회원들은 ‘컴도저(컴퓨터+불도저)’ ‘명박신화’ 등의 표현으로 이 후보 띄우기에 바쁘다.

그러나 정작 정치 관련 커뮤니티와 게시판 등에서는 이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별명이 더 주목을 받고 있다. 도곡동 땅 의혹이 제기된 이 후보에겐 ‘땅바기(땅+명박이)’ ‘양파명박(까도 까도 의혹이 나온다)’ 등이 붙었다. BBK 주가조작 의혹을 두고는 ‘주신(株神ㆍ주가 조작의 신)명박’도 자주 보인다. 이 후보가 록가수 마릴린 맨슨과 닮았다고 해서 ‘맨슨 박’, 목소리가 다소 쉬었다고 해서 ‘쉰명박’으로 부르는 네티즌도 있다.

정동영 후보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악칭의 소유자다. 정 후보의 캠프에서는 참여정부의 성과를 계승하는 의미에서 개성공단 치적을 앞세운 ‘개성동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선거 구호로 사용하고 있는 ‘가족행복 시대’에서 ‘행복’을 따와 ‘행복동영’이라는 말도 퍼뜨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인터넷에서는 ‘곶감동영’ ‘효도정’ ‘구정물 동영’ 등이 더 각광받고 있다.

‘곶감동영’은 9월 대통합민주신당 경선 토론회에서 유시민 후보가 “정 후보에게 참여정부는 곶감 항아리 비슷하다. 가끔 와서 빼가시기만 하고…”라는 발언을 빗댄 역설적 풍자다. ‘효도정’은 2004년 총선 당시 정 후보가 “노인들은 투표 때 집에서 쉬셔도 된다”는 말을 비꼬는 별명이다. ‘구정물 동영’은 열린우리당 탈당 기자회견에서 “통합의 마중물이 되겠다”고 말한 것과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불법선거 논란이 뒤엉켜 마중물이 구정물로 바뀐 것이다.

◇문휴지ㆍ이인새ㆍ쇼학규=창조한국당을 창당하며 깃발을 올린 문국현 후보에게는 ‘문휴지’라는 별명이 붙었다. 화장지 등 생활용품을 생산하는 유한킴벌리 대표이사를 지낸 과거 이력 때문이다. 이 별명은 한나라당 측에서 부추긴 면이 없지 않다. 최근 논평에서 “바람만 불면 날아갈 휴지 후보”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에게는 ‘이인새’, 신당 경선에서 탈락한 손학규 의원에게는 ‘쇼학규’라는 별명이 각각 붙었다. ‘이인새’는 ‘철새처럼 때마다 당을 바꾼다’, ‘쇼학규’는 ‘14년간 몸 담았던 당을 떠나 신당에서 경선을 치르는 쇼를 보여줬다’ 는 의미다.

◇악칭도 부럽다=후보들의 별명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격 모독’에 가까운 수준이다. 하지만 별명도 이들에 대한 인지도와 반(反)지지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지도와 지지도가 올라갈수록 관심도 높아진다. 풍자와 조롱 섞인 악칭을 역이용해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양파명박’은 ‘까도까도 똑같은 양파’, ‘곶감동영’은 ‘곶감으로 우는 아이 달래는 동영’ 등으로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컨설팅 업체의 한 임원은 “미움보다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다. 나라를 책임질 자리에 오르기 위해 대통령 후보로 나선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명함을 돌려야 하는 촌극보다는 낫지 않느냐”라며 “껄끄러운 별명이겠지만 이를 이용해 넷심을 잡는 포용정책도 시도해볼 만 하다”고 말했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은 “냉소적인 별명을 짓는 것은 자신이 ‘안티’하는 후보를 끌어내리고 ‘미는’ 후보를 올리면서 정의구현을 하겠다는 넷심이 반영된 것”이라며 “별명 하나로 후보의 과거사를 촌철살인으로 요약하는 재미를 느끼며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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