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15.녹색의 장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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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영화구경의 목적이 현실도피라면 『녹색의 장원(Green Mansions)』은 그 완벽한 수단이 되리라.살랑거리는 나뭇잎들사이에 숨어 있는 아기사슴,정글의 비경에 담긴 설명되지 않는 공포감,강가의 아나콘다,안개낀 신화적 분위기의 숲,나무늘보.뇌조.나비가 함께 있는 자리,달빛이 비치는 곳에 피었다가 사라지고 다른 곳에서 다시 피어나는 하얀 윤회의 꽃,아마존 정글의 환상적 풍경속에서 벌어지는 얘기라면 그것은 전설놀이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은 박물학자며 소설가인 윌리엄 헨리 허드슨(1841~1922)이 쓴 대표작.아르헨티나 혈통을 지닌 영국인이었던 그는 아마존 정글에서 3년을 보내며 이 소설을 썼다고한다. 카라카스에서 국방장관의 아들이었다가 살해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정치자금을 마련하려 황금을 찾아 정글로 들어간 아벨(앤터니 퍼킨스)이 「금지된 숲」에 사는 「악마의 영혼」으로알려진 누더기 옷의 요정 리마(오드리 헵번)를 만나 맨발로 숲속에서 사슴을 데리고 놀며 사랑에 눈뜬다는 동화처럼 아름다운 얘기다.인간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사춘기 심리를 자극하는 『녹색의 장원』은 얼마쯤은 미리 접어두고 봐줘야 하는 「접바둑」영화기 때문에 환상이란 전제 위에 제멋대로 얘기를 전개시키는 자유를 작가가 누리는 한편 관객은 당위성을 추리해야 하는부담이 없어 서로 편한 만남이다.그러나 너무 자연스런 상상은 동화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토속적 소재를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만들어 해외시장으로 내보내려고 할 때 전설과예술의 한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느냐를 놓고 좋은 공부가 될만한 작품이기도 하다.어쨌든 작가는 마음놓고 거짓말을 하고 관객도 사고방식이 유치해져도 좋다는 타협은 속편한 것이다.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던 당시엔 원주민 추장으로 출연한 하야카와 셋슈가 일본계 미국인이라고 해서 그의 모습이 나오는 장면이 모두 잘렸다.그래서 아벨이 원주민 촌락으로 잡혀가 땡볕에 서서 용기와 인내심을 증명하는 장면에서 추 장은 보이지않고 그의 아들인 헨리 실바만 화면에 나왔다.하야카와는 『콰이강의 다리』에서 포로수용소 소장으로 나와 앨릭 기니스와 대결한할리우드 배우며,어윈 쇼의 소설 『젊은 사자들』에선 연예인 마이클이 징병검사소에서 『내가 아는 일본인은 하야카와 셋슈 뿐이다』라고 하는 대목이 나올만큼 유명한 배우다.일본영화의 개방이라는 숙제를 앞에 놓고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일본이 가장 먼나라처럼 느껴지는 역사적 숙명을 되새김질해봐야 할 일이다.
이 영화를 감독한 멜 페러는 오드리 헵번의 남편이었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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