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바스티유 오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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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드골정부의 문화장관을 지낸 작가 앙드레 말로는 프랑스는 음악의 나라가 아니다고 공언했다.
비제의 카르멘,구노의 파우스트는 지금도 세계 오페라무대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그러나 오페라의 고장으로서 파리는 비엔나국립오페라나 런던의 코벤트 가든,밀라노의 라스칼라에 적수가 못된다.
프랑스의 자존심이 미테랑의 사회당 정부를 움직였다. 89년 프랑스혁명 2백주년을 맞아 바스티유 감독자리에 프랑스의 간판 오페라 전당을 세웠다. 총공사비 6억달러. 여기 여러분의 장래에 국가가 투자한다 라는정책의지도 초석에 담았다.
87년9월 다니엘 바렌보임이 바스티유 오페라 창단 음악감독으로 영입됐다. 그러나 1년여만인 89년1월 그는해고됐다.연봉삭감에 응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바렌보임의 연봉은 수당을 합쳐7백만프랑(1백10만달러)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 바렌보임은 프랑스의 금관악기를 독일것으로 교체시키고 유럽적 음색을 고집했다. 구노와 생상스들을 따돌리고 모차르트와 베르디.바그너를 주된 레파토리로 삼았다. 그의 지휘봉은 프랑스적영광을 외면했다 기성의 지휘계가「문화의 정치」에 항의,후임 영입에 은밀한 보이콧을 펼쳤다.찰스 매크라스卿과 로린 마젤.샤를뒤트와.첼리비다케,폴란드의 야노프스키등이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35세의「신참」 鄭明勳에게는 기회였다.개막축제의 성공,그리고독일 그라모폰과 오케스트라 레코딩 독점계약 등으로 실적을 쌓아가던중 지난 12일 그 역시 돌연 해고당했다.
「연봉삭감 재협상에 불응」으로 발표됐지만 이유는 이번에도 돈이 아니었다.보수당 정부의 투봉 문화장관이 후임자를 정해놓고 벌이는 의도적인 「밀어내기」였다.
「오페라 지휘 경험이 얕아 리허설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불명예도 곁들였다.
89년5월 그가 음악감독에 취임했을 때 그의 천진함과 열성이世波에 닳은 바스티유의 벽을 어떻게 감당해낼지에 지휘계는 안쓰러움을 드러냈다.
「예술적 자유」는 예술가의 생명이다.「바스티유의 현대판 목자르기 앙코르」라는 비난을 받을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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