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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할말은하자>22.수사기관의 권위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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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회사원 韓모씨(29)는 3년전 평생 못잊을 체험을 했다.
술집 호스티스의 유혹에 말려들어 성관계를 맺은게 화근이 돼 강간치상범으로 몰려 구속된 것이다.
폭력이나 협박을 쓴 일이 전혀 없는데도 술집 여자의 뒤를 봐주고 있는듯한 사내가 피해를 보상하라며 합의금을 요구하고 나섰다. 韓씨가 합의를 거절하자 여자는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여자측의 주장만 믿고 그를 구속기소했다.
1,2심 모두 징역3년을 선고받은 韓씨는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환송돼 결국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4백56일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그가 여자측과 경찰을 무고및 불법체포혐의로 고소한 것은 당연한 대응이었다.
그러나 검찰은 불법수사한 경찰관을 무혐의처분하고 日本으로 도망친 여자는 기소중지했다.돈을 요구한 사내에 대해서도 4개월간이나 처리를 미루다 공범인 여자가 잡히기 전까지는 처벌할 수 없다며 역시 기소중지처분을 내렸다.
韓씨의 억울한 옥살이는 경찰수사를 지휘 감독하며 수사상의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검찰에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韓씨의 거듭된이의 제기에 대한 검찰의 답변은 무혐의처분 통지거나「검사의 불기소결정이 부당하다고 인정할만한 자료가 없음」이 라고 써진 항고기각 통지서뿐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저지른 실수를 인정하는데 인색한 것은 억울하게 피해를 당했더라도 법률지식이 부족한 시민들로서는 마땅한대응수단을 못찾아「벙어리 냉가슴」만 앓을 수밖에 없는 탓이 크다. 그러나 잘못된 수사로 고통을 당한 피해자들은 권위주의적 태도에 또 한번 눈물을 지으며 검찰,나아가 정부의 법집행을 불신하게 되기 쉽다.
보일러에 관한 특허 6개를 갖고있던 (주)만능기계 朴흥식사장은 92년 은행에 예금한 돈이 있는데도 부도를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경험했다.거래은행의 담당대리가 꺾기자금으로 유치한 예금이라는 이유로 약속어음 2천3백만원의 결제를 거절 했기 때문이었다.
朴사장은 곧바로 담당대리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했으나 서울지검은 사기와 횡령 혐의로 죄명을 바꾸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朴사장은 검찰뿐 아니라 경찰과 재무부.은행감독원.국회등을 뛰어다니며 고발하고 진정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鄭鐵根기자〉 올해에도 經實聯 부정부패고발센터를 통해 재무부에 진정을 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관련 기관들은 한결같이 朴씨의 억울함을 어느정도 인정하면서도최종적으로는 은행측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25년간 보일러 개발에만 매달린 朴사장은 금융기관의 횡포로 인해 7억~8억원이나 투자한 공장을 경매처분당하는등 회복할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그는 憲裁결정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憲裁가 그의 억울함을 풀어줄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지만 2년동안 한 보따리나 되는 소송자료를 갖고 관청을 드나들며 그가얻은 것은 억울하게 당하는 약자를 구제하지 못하는 우리 제도의구조적 결함에 대한 불신감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수사기관의 권위주의.형식주의.업무편의주의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시민들의 주권의식이 높아지면서 검찰을 포함한 법조계의 부당한처분에 공동 대응,『아무리 센 국가기관이라 할지라도 할말은 하자』는 움직임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經實聯 부정부패고발센터에 현재 접수된 법조 피해사례만도 이미1천여건을 넘어섰을 정도다.
물론 이들중 상당수는 객관성이 결여된채 자신의 억울함을 일방적으로 호소하는 수준이지만 검찰.법원의 처분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억울한 사연들도 꽤 포함돼 있다는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9월 10일 창립예정인「참여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위원장安京煥서울대교수)는 변호사.대학교수.문인 1백50여명이 중심이돼 본격적인 법률피해 구제활동을 벌일 계획이다.또 올 2월 출범한 공정사회구현 법률소비자연맹도 검찰.경찰. 법원에 비해 약자인 일반시민의 권리구제를 위해 창립돼 자원봉사자를 모집중이다. 재산문제로 송사에 휘말렸다 검찰에 구속돼 무죄를 확정받기까지 2년동안 옥살이를 한 金仙月씨(65)는 몇년째 거의 매일 법원.검찰에 출근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해 법조 주변에선 유명인사가 됐다.
법률피해자 모임인「새한시민회」회장이기도 한 金씨는 국회의원 64명의 서명을 받아 최근 담당검사의 직권남용사건에 대해 공청회를 열어 달라는 청원까지 제출해 놓은 상태다.
金씨는『18년 동안 나의 무죄와 검찰의 부당함을 증명하기 위해 싸우는 동안 목포시에 있는 집등 전 재산을 날리고 생활보호대상자가 됐다』며 『청원까지 낸 것은 단지 피해보상만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고한 국민이 다시는 권력의 횡 포로 인해 피해를 보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金씨 주장이 다 옳지는 않을지라도 金씨처럼 검찰의 직무집행에「할말이많은 시민」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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