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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이종석 NSC 사무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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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문제, 한.미동맹 문제, 남북 문제 등 한반도 외교.안보의 현안을 다루는 수많은 인사들 중 국내외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사무차장이다.

그는 현 정부 들어 역할과 위상이 강화된 NSC의 실세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정확하게 읽어내고 집행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취임 후 단 한번도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은 한국 외교.안보정책의 핵심 기획자이자 실력자인 李사무차장을 지난 3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2차 6자회담이 오는 25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것으로 확정발표됐다. 1차회담이 열린 지 6개월 만에 우여곡절 끝에 열리게 됐지만 국민의 기대가 매우 크다. 전망이 어떤가.

"협상 여하에 따라 진전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한 노력들이 잘 되면 회담의 정례화나 공동문안 채택과 같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예측 가능한 상대로 보기 어려운 측면들이 존재한다. 회담이 열린다는 것만 해도 상당히 어려운 과정들을 거쳐온 결과다. 평가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이번 2차 6자회담에서 정부가 기대하는 최대치나 최소치 같은 게 있나.

"북한 핵 문제를 풀어가는 길은 긴 여정일 수밖에 없다.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그 속에서 해결을 향한 전진, 모멘텀을 만들고 협상을 하는 과정을 거치면 합의점에 이를 것이다. 그러한 기나긴 여정 중 지금은 위기 단계에서 협상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이다. 협상국면에서 어떻게 모멘텀을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전마선과 같이 속도계도 없는 배를 타고 조종간을 잡고 있는 기분이다. 열심히 노만 저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 국면을 뚫고 나가야만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에 있어 일대 전환을 가져 왔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답방하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답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약속은 아직도 유효한 것인가. 또 답방이 단기간에 어렵다면 그 이전에 남북 정상이 제3국에서 만날 가능성은 없나.

"金위원장 답방은 6.15 공동선언 약속사항이다. 당연히 열려야 한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열리려면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남과 북, 세계의 기대를 충족시킬 성과가 있어야 한다. 또 한반도 안보 상황이 현재보다 개선될 가능성과 남북관계가 더 크게 진전될 내용이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 정상들과 만나는 것과 달리 그러한 조건이 있다는 게 남북 정상회담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의미다.

현재 북한 핵 문제가 과거와 전혀 다른 한반도 전략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핵위기를 평화적인 분위기로 만들 수 있는 전망이 있거나 반대로 핵 문제가 상당한 진전을 보여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면, 그리고 남북 관계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성사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정상회담을 반드시 해야 하지만 역사적 의미나 안보상황, 남북관계의 의미 등을 종합해 볼 때 정상회담을 논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이 일정하게 성숙되면 정상회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겠는가."

-지난달 윤영관 외교통상부 장관의 교체는 그동안 안보.외교분야에서 이견을 보여온 자주파와 동맹파 간 갈등의 결과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 세간에서 李차장을 자주파의 핵으로 부른다. 이에 대한 생각은. 그리고 李차장의 대미관은.

"(허리를 곧추세우며)어떤 행위자의 행동을 보고 관찰자들이 나름대로 별명을 붙일 수는 있다. 그러나 자주파.동맹파라는 말은 지나치게 과장되고 왜곡됐다는 점에서 유감이다. 그러한 논란들이 외교.안보 진영의 단합을 해치고, 실제보다 균열을 부각시켜 국익을 훼손하고 한.미관계 등 국가관계에 심대하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어떤 국가든 자주적인 길을 추구하는 것은 대단히 소중하다. 또한 한국이 주변국가와의 협력을 유지하는 것,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는 것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한국의 외교현실에서 자주와 동맹은 균형적으로 보완발전 관계에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외교에서 자주와 동맹은 그야말로 나는 새의 양 날개와 같다. 미국은 매우 중요한 존재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보다 합리적이고, 우리가 이해할 것은 이해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주장할 것은 주장할 수 있는 관계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나는 자주파라기보다 균형적 실용주의자다."

-하지만 지난번 용산 미군기지 이전 협상과정에서 미국이 용산기지에 28만평을 보장해 주면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우리는 17만평을 주장해 결국 결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10만평의 자존이 미군의 한강 이남 이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냐는 힐난도 있다.

"용산기지 이전 문제는 이미 1990년에 시작됐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옮기지 않겠다고 엄청나게 반대했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민족자존이라는 모토를 세워 밀어붙였다. 2000년까지도 미국은 잔류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용산기지 이전 비용은 이전을 요구한 우리가 제공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2월, 우리가 미국에 한미연합사령부는 남으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래서 잔류협상을 시작했다. 9월 말까지 국방부 실무진은 15만평선에서 합의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은 28만평을 요구했다. 테러를 대비하기 위한 계산이 적용된 것 같았다. 우리정부는 난감했지만 협상을 했다. 그러나 미군이 11월에 들어 평수 문제가 아니라 아예 내려가는 것으로 결정했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미군기지의 이전 문제는 미국의 세계 전략 속에서 움직이는 문제이기에 우리가 떼를 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주한미군의 전면적 재배치, 동북아 지역군으로의 역할 재조정 등의 이유로 이전한다는 입장을 받아들인다 해도 전력공백 등에 대한 안보 우려 심리가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력공백 등은 어떻게 메울 생각인가.

"한미연합 당국은 미군이 재배치된다 해도 전력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세계 전략이 바뀌었다. 미국은 사람과 군대의 숫자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속화.경량화.기동화라는 관점에서 전쟁의 개념을 정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기지 이전과 병력조정을 계획하고 있다. 그것은 주한미군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련, 미국은 향후 4년간 1백10억달러를 투자해 전력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정부도 자주국방을 추진 중이다. 미국이 아무리 합리적으로 전력을 운용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미군 전력은 '자주국방력+α'라는 생각에 기초해 북한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억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자주국방의 기초다. 여기다 한.미 군사동맹이나 주변 국가의 협력을 활용하는 협력적 자주국방을 이루면 안보상 문제는 없다. 문제는 예산인데 현재 2.8%인 국방예산을 점진적으로 올려 3.2%선까지는 가야 한다는 게 개인적 소신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외교원칙이랄까, 개념은 어떤 것인가.

"지난 1년간 추진했던 외교.안보 분야의 결과를 바탕으로 균형적 실용외교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지난 연말부터 각 부처와 NSC 등이 협의해 만든 개념이다. 국가가 추구하는 이익과 지향하는 가치 사이의 균형, 또 세계화와 지역화, 세계화와 국가 정체성 사이의 균형, 동맹과 다자간 안보협력 사이의 균형,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형 등 우리 외교는 균형을 잡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고 봤다."

-주한 미 대사관 신축부지 문제에 대한 입장은 어떤 것인가.

"나는 기본적으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다. 우리가 손해를 보더라도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 그래야 더 당당해질 수 있으며 국가 간의 신의가 생긴다. 미 대사관 부지는 우리가 미국에 사라고 해서 미국이 산 것이다. 문제는 이곳이 문화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덕수궁의 핵심적 유적이냐 아니냐는 것이다. 1984년에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지를 사라고 한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현재 문화재청의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미국이 새로운 대사관을 지을 수 있도록 부지를 마련해 줄 의무가 있다."

-일본 자위대가 우리보다 먼저 이라크에 갔다. 국익을 고려한다면 이라크 파병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라크 파병은 언제쯤 이뤄지나.

"일본 자위대는 지난해 봄 미국으로부터 요청받고 진행된 것이며 우리는 가을에 요청을 받았다. 일본과는 시차가 있다. 4월 말께 현지에 파병키로 미국과 합의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며 우리군 파병을 결정한 것이 아니다. 미국과 협상을 통해 우호적인 결과를 가지고 결론을 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파병안이 제때 국회에서 통과가 안 돼 파병 시기가 늦어지면 국가의 신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번에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현재 NSC는 파병동의안의 처리를 이룩해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국민에게 현재의 상황은 지난 1년 전과 비교해 어떤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나.

"참여정부 출범 때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고 평가한다. 안보상황은 북핵 문제, 한.미 관계, 남북관계 세가지 정도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참여정부 초기에 비해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돼 가고 있다. 현재가 대단히 좋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비해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안보환경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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