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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감이라고 다 같은 감인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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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렁주렁 달린 청도 반시. 청도 감은 유달리 동글납작해 소반 반(盤)자를 써 반시라고 한다. 씨가 없고 수분이 많은 것이 특징.

가을의 상징은 셋이다. 단풍, 억새, 그리고 잘 익은 감. 뭘 더 좋아하느냐는 취향 따라 다르겠지만, 실용성만 따지자면 감이 으뜸이다. 단풍·억새야 눈 즐거운 게 다지만, 감은 입에 달고 코에 향긋하다. 풍기는 정조(情調)도 그렇다. 단풍·억새의 아름다움엔 왠지 모를 처연함이 배어 있다. 하지만 감 익는 들녘 풍경은 보고만 있어도 맘이 넉넉해진다.

 그 감, 지금 경북 청도에 가면 원 없이 볼 수 있다. 오늘(26일)부터 주말 까지 축제다. 주렁주렁 달린 ‘가을’ 따러, 함께 떠나보자.

<청도>글·사진=김한별 기자

 정원수도 가로수도 감나무
 감은 두 종류다. 단감이 있고 떫은 감이 있다. 모르는 사람은 그저 익고 안 익고의 차이로 알지만, 둘은 아예 종 자체가 다르다. 단감과 달리 떫은 감은 다 익은 뒤에도 오래도록 떫은맛이 남는다. 떫은 감이 우리 재래종, 단감은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전국에서 떫은 감이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곳이 바로 경북, 그중에서도 청도다. 재배면적이 무려 1750㏊. 상주(700㏊), 충북 영동(300㏊)에 비해서도 월등하다. 그래서 어딜 봐도 감 천지다. 딱히 농장·과수원을 찾아갈 필요도 없다. 정원수가 감나무고, 가로수가 감나무다. 안방 창문을 열어도 감이요,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봐도 감이다. “눈을 감지 않고선 안 볼 재간이 없다.” 청도 사람들 농담, 그대로다.

 옛날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전엔 복숭아가 대표 작물이었다. 하지만 복숭아는 6~8월 한여름 땡볕에 따야 한다. 수확 시기도 짧다. 백도는 최적기 하루 이틀을 놓치면 끝이다. 반면 감은 선선한 가을, 그것도 한 달 여유로 천천히 딴다. 상품성도 더 높다. 그냥도 먹지만 식초·와인을 담근다. 잎은 차로 끓여 먹는다. 채 익기 전 떨어진 낙과조차 옷·침구 물 들이는 데 쓴다. 감이 돈이 되자 전업하는 이들이 늘었다. 이제 청도는 명실상부한 ‘감 나라’다.

 이서면 신촌리 세월마을 산 90번지에 가면 오늘의 청도를 있게 한 감나무 시조목을 구경할 수 있다. 조선 명조 1년 평해군수 박호가 가져온 감나무 가지를 고욤나무에 접붙여 키운 것이라고 한다. 수백 년 세월이 흐르고 키가 수십 m로 자랐지만, 밑동엔 그때 접붙인 자국이 뚜렷이 남아 있다.

 씨가 없고 유달리 동글납작
 

왼쪽부터 잘게 썰어 말려 먹는 감 오그락지, 감 와인.

청도 감은 여러 모로 특별하다. 일단 생김부터가 다르다. 딴 지역 감에 비해 유달리 동글납작하다. 그래서 이름도 소반 반(盤)자를 써 반시(盤枾)다.

 씨가 없어 더 특이하다. 아예 없지는 않고, 열에 아홉이 그렇다. 씨 없이 씨방(열매)만 생길 수도 있는 걸까? 청도군 농업기술센터 조기동 실장은 ‘그렇다’고 말한다. “수정이 안 되고도 열매가 맺히는 걸 단위결실(單爲結實)이라고 하는데, 청도 반시는 여러 감 중 유독 단위결실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꽃 없이 암꽃만 피고서도 쉽게 감을 맺는다.

 물론 씨가 없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연시야 먹기 편해 좋지만 곶감을 못 만든다. 단단한 속 부분이 없으니 실에 꿰 매달지 못하는 탓이다. 모양도 쉽게 이지러진다. 그래서 대신 발달한 게 감 말랭이다. 반찬으로 먹는 무말랭이 동생쯤으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어디까지나 생으로 먹는, 말린 감이다. 통 곶감을 만들지 못하니 잘게 조각내 말렸을 뿐이다. 할머니들은 사투리로 ‘감 오그락지’라고 부른다.

 “감을 가래떡 맨치로(처럼) 얇게 사래가(썰어서) 볕에 말리는 기라. 그래가(그래서) 입동 때쯤 무우만(먹으면) 얼마나 달다꼬(달다고).”

 재래 방법은 검게 변색되고 벌레가 꼬이는 게 단점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크게 서너 조각을 낸 뒤 기계로 급속 건조시킨다. 덕분에 주홍빛 예쁜 감 색깔 그대로에 한결 위생적인 말랭이를 맛볼 수 있게 됐다. 한입에 넣기 딱 적당한 크기. 겉은 곶감보다 더 꼬들꼬들하고 속은 연시 못잖게 살살 녹는다. 겨울철 간식으로 그만이다. 넋 놓고 있으면 끊임없이 손이 간다.
 
 청도 반시 즐기는 세 가지 방법
 감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직접 따먹는 재미가 최고다. 청도 반시 축제장 인근에 감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농장이 많다.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하고 가면 현장 신청 시간을 아낄 수 있다. 농부와닷컴(www.nongbuwa.com, 054-373-5565)은 1인당 5㎏에 5000원씩을 받는다.

 씨가 없고 수분이 많은 청도 반시는 감물 염색에도 제격이다. 내일(27일) 오후 6시 감물염색 아카데미 수강생들의 졸업작품 80여 점을 선보이는 패션쇼가 열린다. 직접 감물을 들여 보는 체험 행사도 있다. 청도에서 처음 감물 염색을 시작해 널리 보급한 꼭두서니(www.kokdu.com, 054-371-6135) 공방 김종백 대표 등이 참여한다.

 ‘어른들만의’ 감 체험도 가능하다. 화양읍 송금리 산 중턱에 가면 청도의 명물, 감 와인을 맛볼 수 있다. 옛 경부선 폐터널을 카브(Cave·와인 저장고)로 쓰는 와인터널(www.gamwine.com, 054-371-1904)이 있다. 이곳의 감 와인은 2005년 부산 아태경제협력체(APEC) 만찬주로 쓰인데 이어 올 청와대 추석 선물용으로 납품돼 화제가 됐다. 와인 초심자용 ‘감그린 No3’(1만8000원)와 단맛을 줄인 고급형 ‘감그린 No5’(2만5000원)를 공짜로 맛볼 수 있다. 서리 맞은 감을 이용해 만드는 아이스 와인(8만9000원)은 워낙 소량이라 시음에서 제외된다.

TIP

■교통=서울서 KTX로 동대구까지 간 뒤 기차를 갈아타고 청도로 가는 게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약 2시간30분쯤 걸린다. 차를 이용할 경우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신 대구-부산 간고속도로 청도IC로 빠져나오면 된다.

■먹거리=청도가 소싸움으로 유명해진 뒤 한우까지 떴다. 청도축협 지점이 6곳 있다. 대구에서 청도로 넘어오는 팔조령 아래 이서점(054-373-5201)에선 암소안심 1(A) 등급이 5만8000원 안팎이다. 축협 고기를 받아 파는 바로 옆 청도한우마을가든(054-372-9291)도 대구에서 찾아오는 단골이 많다. 꽃등심 150g 1만8000원, 특갈비살 130g이 2만2000원. 군청 인근 코보식당(054-373-5588)은 돼지수육 전문점. 청도 결혼식·장례식장 고기를 다 댄다고 소문난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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