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계, 법망 피해가려 젖먹이 후원자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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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배기 칼린은 얼마 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에게 후원금 2300달러(약 211만원)를 냈다. 칼린의 언니 이마라(13)와 오빠 이슈마엘(9), 사촌 챈(13)과 알렉시스(13) 역시 각각 2300달러 짜리 수표를 오바마 측에 보냈다. 이들은 모두 시카고의 금융 부호 엘릭 윌리엄스네 집안 아이들이다.

24일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는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최근 유세가 본격화하면서 윌리엄스가(家)의 자녀들처럼 대선 후보들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미성년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후원자들이 1인당 연간 후원금의 상한선을 2300달러로 정해놓은 미국 선거자금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자녀 명의까지 빌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행 선거법은 후원자의 연령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해도 젖먹이까지 동원한 선거자금 후원에는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다. 오바마의 대선 캠프에서도 윌리엄스네 아이들의 사례가 논란이 되자 "캠프 자체 방침상 15세 이하 어린이의 정치자금은 받지 않는다"며 "정중히 돌려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측은 두 달 전 메릴랜드의 부동산 개발업자 애리스 머디로션의 8세, 7세짜리 두 자녀가 각각 2300 달러의 후원금을 보냈을 때도 돌려 보냈다.

미성년자들이 낸 후원금의 정확한 액수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미국 선거관리위원회가 연령별 집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업을 학생이라고 밝힌 이들이 낸 후원금 총액은 2000년 대선 유세시 첫 6개월 동안 33만8464달러에서 올해는 196만7111달러로 껑충 뛰었다고 민간 선거자금 조사기관인 정치호응센터(CRP)가 밝혔다.

미국 의회는 2002년 18세 이하 미성년의 정치자금 후원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했으나, 대법원에서 미성년자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결하는 바람에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 그러자 2005년 선관위가 후원자금과 관련 ^어린이 본인의 돈일 것 ^기부 후에 부모가 돈을 채워주지 않을 것 ^아이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것 등 세 가지의 단서 조항을 제정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윌리엄스 측은 "아이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법적 수탁자가 대신 기부한 것이므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거부당한 머디로션 집안 역시 "우리 아이들은 정치에 아주 관심이 많다"며 '자발적인 기부'였음을 강조했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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