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공정’ 비판하면서 우리강 이름 중국식 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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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滿江). 압록강은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고, 두만강은 한반도에서는 드물게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강이다. 2000년 국립국어원에서 제정한 두 강의 영문 이름은 각각 ‘Amnokgang’ ‘Dumangang’이다.

하지만 국내 주요 언론사에서도 이러한 표기 준칙을 무시하고 중국 쪽 호칭 표기를 써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표기라는 이유에서다. 국내 언론사들은 최근 중국의 한국 고대사 왜곡을 고발하고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다룬 바 있다. 한쪽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강에 대해 중국식 호칭 표기를 관행적으로 써왔다.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 연합뉴스의 영문 사이트(english.yonhapnews.co.kr)를 검색해 보면 두만강을 지칭할 때 ‘Tumen’이라는 표현은 모두 236건(이하 24일 오전 기준)인 반면, ‘Duman’은 단 2건에 불과했다. ‘Tumen’은 두만강(豆滿江)을 중국어 발음대로 적은 것이 아니라 중국이 주장하는 ‘도문강’(圖們江)의 영문표기다. 압록강의 경우도 중국 쪽 표기인 ‘Yalu’를 쓴 경우는 109건이었지만 ‘Amnok’이라고 표기한 것은 ‘Yalu’의 절반인 57건에 불과했다.

‘국민의 방송’‘공영 방송’을 표방하는 KBS에서 영어뉴스를 제공하는 ‘KBS 글로벌’(english.kbs.co.kr)이 압록강을 ‘Amnok’이라고 표기해 보도한 경우는 2건에 그쳤다. 반면 ‘Yalu’라고 보도한 경우는 24건이었다. 두만강도 ‘Duman’이라고 바로 표기한 경우는 5건에 불과했고, 나머지 25건은 모두 ‘Tumen’이라고 보도했다.

3월 27일 조선일보 영문 사이트에 실린 기사. 압록강을 지도와 기사에서 모두 '얄루 리버'라고 표기(빨간 네모)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영문판 사이트(english.chosun.com)도 마찬가지다. 두만강을 ‘Tumen’이라고 쓴 경우는 15건이었다. ‘Duman’이라고 표기한 경우는 아예 없었다. 압록강도 ‘Yalu’가 5건,‘Amnok’이라고 쓴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했다.

코리아 헤럴드(Korea Herald)도 ‘Tumen’ ‘Yalu’라고 쓴 경우가 각각 33건과 35건으로 압도적이었다. ‘Duman’ ‘Amnok’이라고 표기한 경우는 각각 5건과 8건에 불과했다. 코리아 타임즈(Korea Times)도 ‘Tumen’이라고 쓴 기사는 4건, ‘Yalu’로 쓴 경우는 6건이었다. ‘Duman’이라고 표기한 경우는 전혀 없었고 ‘Amnok’이라고 표기한 경우도 2건이었다.

연합뉴스는 세계 60개 주요 통신사에 뉴스를 제공하고 있고, KBS는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창구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 만큼 국내 언론사들이 지명 표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립국어원 국어정책팀의 한 관계자는 “국내 언론사들이 지명 표기 문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면서 “우리가 정한 표기법을 우리가 지키지 않으면 외국에서도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의 주요 언론사들은 외국에 한국을 알리는 창구 역할을 수행하는 곳인 만큼 국립국어원이 정한 표기법에 따라 지명을 바르게 표기하는 일에 솔선수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의 취재 소식이 전해지자 국정홍보처 해외홍보원은 연합뉴스측에 앞으로 두만강과 압록강을 기사에서 다룰 때 국립국어원이 제정한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Duman’ ‘Amnok’으로 각각 표기하도록 요청했으며 이에 연합뉴스측에서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밝혔다.

김용범 기자 [jippe@joongang.co.kr]

▶압록·두만강을 중국 강이라고 표기하는 한심한 정부
▶세계지도에서 '압록강' '두만강'은 중국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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